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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을 위해 분주하다 벼랑에서 떨어져 숨진 어머니(포토)

2012-05-14 기원 하 다:Kaiwind


대협곡따라 이어진 절벽산길이 바로 어머니가 숨진 곳

 

사천성 한원(汉源)현 계현(桂贤)향에 살고 있는 장소민(张小敏, 32세)입니다. 저의 어머니 성함은 이원진(李源珍)이고 1955년 출생, 초중 학력입니다. 아버지는 만성천식 환자라 겨울만 되면 발작되어 거의 노동능력을 상실했고 그때 저의 온 가정은 어머니가 야채를 심어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저의 집에서 10여리 떨어진곳에 오사하(乌斯河)진이 있는데 이 지역의 중요한 교통요지고 기차역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장보러 이곳으로 몰리군 했습니다. 어머니는 야채를 여기에 가져다 팔았던 것입니다.

1996년 여름의 이른 새벽, 어머니는 야채 팔러가는 길에 장보러 가는 소보(小堡)향 보건소 의사 황련화를 알게 됐습니다. 황련화는 고달프게 사는 어머니 사정과 아버지의 병을 알고 어머니에게 법륜공을 수련하라 극력 권했습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정이 득을 얻으며” 법륜공을 수련하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며 또 아버지를 도와 소업을 한다 한바탕 선전했습니다.

어질고 순박한 농민인 어머니는 의사인 황련화마저 법륜공을 수련하는데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하는 아버지를 두고 이처럼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을 필요없이 건강이 좋아진다는 공법이 있다는데 한번 해 봐야지 라는 생각에 황련화한테서  <전법륜>과 연공 방석 하나를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좋아라 아버지를 함께 연공하자 권했고 아버지가 믿지 않자 아무튼 “한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정이 득을 얻는다”는데 내가 연공을 잘하면 남편의 병업도 자연히 따라 없어지려니  
혼자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초기 어머니는 그나마 가정을 돌보고 또 시장에 나가 야채를 팔았지만 1997년 8월, 제가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부터 더는 야채를 심지도, 팔러 다니지도 않았고 병환에 계시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약을 달여드리지 않았을 뿐 더러 아버지 혼자 집에서 약을 달이지도 못하게 했고 약을 달이면 그의 수련에 지장을 준다 했습니다. 할수없이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양약을 사서 드렸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드시는 약을 보기만 하면 빼앗아 화장실에 버리며 약을 복용하면 더 많은 업이 쌓이게 되므로 청리가 어렵다 했습니다.

천식환자에겐 겨울이 제일 두려운 법입니다. 워낙 천식환자인데다 어머니가 법륜공에 심취되면서 부터 약도 제대로 드시지 못해 아픈데다 화까지 나셔서 1997년 11월말 들어눕게 됐습니다. 병 때문에 고생하는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려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했고 자신이 아버지를 도와 소업을 한다 고집했으며 소업과정이 바로 고생하는 과정이라며 /‘병원/’ 두 글자를 다시 꺼냈다간 저와 모녀관계를 끊는다 했습니다.

아무리 어머니를 설득해도 소용없는데다 직장일이 바빠 구정 휴가때 돌아와 다시 설득시키리라 생각하고 출근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웃에서 어머니가 정신질환에 걸렸고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놓자 부랴부랴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두손을 가슴앞에 십자로 모으고 머리에 흰 타올을 두르고 흰 솜옷에 흰 양말을 신고 다리를 틀고 방 중앙의 흰 나무판자우에 앉아 무어라 중얼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방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웃옷을 벗은 채 침대가에 비스듬히 누워서 온 몸을 떨며 저를 보자 무어라 하셨습니다. 귀를 아버지 입가에 대자  힘겹게 “민아, 난 더 견디지 못할것 같다. 너  에미를 탓하지 말거라, 내가 간후 너 엄마를 모시고/…/…”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아버지는 숨을 거뒀습니다.

저는 아버지 사망를 예로 어머니를 권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사망에 대한 슬픈 표정 하나 없이 오히려 사부 이홍지의 자비스러운 /‘초도(超度)/’라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걱정돼 저를 따라 시내에 가서 서로 의지하며 살자 권했지만 가지 않을 뿐 더러 저보고 남아서 어머니와 함께 법륜공을 수련하자 했고 제 건강이 좋으므로 수련을 잘하면 꼭 /‘정과/’을 얻을 수 있다 했습니다. 고집부리는 어머니앞에서 어머니를 시내로 모시려는 생각을 그만할 수 밖게 없었습니다.

1999년 7월 22일, 나라에서 법에 따라 법륜공을 취체,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저와 함께 시내에 가서 살자 권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토록 심취된 어머니앞에서 화가 터진 저는 어성을 높여 따지고 들었습니다. “법륜공이 그리 좋으면 아버지는 왜 당신의 소업때문에 사망했겠어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어머니는 울며 저한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보응을 받게 된다는 둥, 어머니의 수련을 방해하는 /‘마/’라는 둥, 저와 관계를 끊을 테니 눈앞에서 꺼지라 호통쳤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생활에서 층차에 오르고 원만 등 따위밖에 모르고 이 딸에 대한 /‘정/’마저도 깨끗이 닦아버렸습니다.

2003년 국경절, 제 결혼식에도 어머니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2005년 4월말 제가 아들을 낳았을때도 저를 보러 오지 않았습니다. 명절때 어머니뵈러 내려갈때 마다 어머니는 남몰래 홍법하러 다니느라 부재중이고 어쩌다 만나면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하고 또 사부의 /‘천안/’이 수시로 하늘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기에 걱정을 덜고 육친의 정을 내려놓아야지 그러지 못했다간 사부의 나무람을 받게 되고 천벌을 받게 된다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해가 되고 하루하루 년세가 많아지는데 젊었을 때와 달리 다시는 나가 다니지 말고 건강에 조심하라”하면 어머니는 오히려 “정법,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시일이 날따라 가까와 지는데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으므로 꼭 대법에 충성하고 실제 행동으로 사부에게 그가 진수제자임을 증명해야만 때가 되면 사부를 따라 법륜세계로 갈 수 있다 했습니다.

2012년 1월 1일, 제가 걱정하던 일이 드디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웃으로부터 어머니가 오사하진으로 통하는 지름길을 가다가 대협곡에서 추락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때 눈앞의 정경에 저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두눈을 뜬 채 큰 암석옆의 풀밭에 누워 계셨고 머리쪽엔 굳어버린 피, 주변에 법륜공을 선전하는 전단지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온몸이 얼음장같이 찼고 사지가 굳어 있었습니다/…/…

며칠후 파출소의 왕경찰관이 저한테 공안기간의 현장 조사 결과 2011년 12월 31일 21시 경, 어머니는 소보향 장가(张家)촌 3조 법륜공인원 황련화로부터 밤새 오사하 기차역에 도착해 홍법을 진행하라는 전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로 가던 중 장하방죽 대협곡의 어두운 산길에서 넘어져 벼랑에서 추락해 사망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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