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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일네 가정 비극 (포토)

2012-04-06 기원 하 다:Kaiwind Auteur:낭곤

유여평 생전

주정일(周正一), 초하구(草河口镇)진 직업기술학교 요리전공 졸업, 현재 요녕성 심양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 주대파는 1998년 11월 목매고 자살했고 어머니 유여평은 2010년 10월 12일 유방암으로 세상떴으며 사망원인이 모두 법륜공과 연관된다. 조정일의 부모들은 전에 모두 초하구진 화학공장 종업원이었다.

주대파 부부는 1984년말 결혼, 이듬해 7월 15일 아들 주정일이 출생했다. 1995년 3월 공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두사람 동시에 일자리를 잃게 됐고 시장에서 식량이나 야채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겨울 추위와 여름 뙤약볕에 내내 고생하던 유여평은 심한 무좀에 걸려 두루 약을 많이 썼지만 근치되지 못했다.

1997년 9월,  물건 사러 자주 드나들던 단골이 알고 법륜공을 수련하면 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지 않아도 병이 근치되고 견지만 하면 또 원만과 백일비승을 할 수 있다며 유여평에게 <전법륜>과 녹음테이프 한셋트를 줬다. 그때부터 유여평은 현지 연공장을 드나들며 법륜공수련을 시작했다. 늘 집안에서만 연공을 했기에 이전처럼 발이 조이지도, 얼지도 않았고 주의력이 연공에 쏠리다보니 가려운줄도 몰랐다. 그는 이를 법륜공을 연공한 효과라 믿고 더더욱 열심했다. 

유여평은 연공에 심취되면서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 등 간단한 소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사부 이홍지를 따라 높은 층차에 오르고 성선성불(成仙成佛)하기를 소원했다. 권해도 소용없자 남편은 혼자서 이를 악물고 가정을 지탱, 낮에는 매장을 지키고 저녁이면 혼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했다.

그래도 유여평은 미안하다는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이 남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때 유여평네 벽에는 이홍지의 초상화가 곳곳에 붙어있고 연공 음악이 아침부터 저녁늦게 까지 그치지 않고 공우들이 몰려 연공, 머리를 조아리고 향을 피우기도 했다. 12세 어린 주정일이 조용히 숙제할 공간도 없이 떠들어댔고 그를 자주 악몽에서 소스라치게 만들군 했다.

할수없이 아빠는 아들을 할머니 집으로 보냈다. 아들은 아빠가 보고 싶어도 감히 집에 돌아갈 엄두를 못내고 시장 매장에 잠간 들려 아빠를 만나군 했다. 30대 아빠의 모습은 50대 같이 겉늙었고 늘 피곤에 찌들고 꾀죄죄한 초라한 모습이었다.

1998년 11월, 시장에 들렸던 주정일은 아빠가 보이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미 3일째 물건 팔러 나오지 않았고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서 집에 달려가 어머니한테 물었더니 “그저께 저녁 나와 한바탕 다투고 나간후부터 보지 못했고 할머니집에 간 줄 알았다” 했다.

알고보니 다툰 원인이 어머니가 온 가족이 아껴쓰며 모아뒀던 1만원을 아빠와 말도 없이 법륜공에 기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주정일은 당장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빠의 실종을 알림과 동시에 경찰에 신고했다.

이틀후 산속에서 나무에 목을 맨 주대파의 시신이 발견됐다. 법의관은 자살로 감정을 내렸다. 남편이 죽었어도 유여평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슬픈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1999년 1월, 할아버지 할머니는 주정일의 호적을 부모들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옮겼고 이때부터 다들 유여평과 발길을 끊었다.1999년 7월 나라에서 법륜공을 취체한 후에도 유여평은 여전히 법륜공에 심취돼 숨어가며 연공을 계속했다.

1999년말, 경찰과 주민위원회에서 주정일의 할아버니 할머니를 찾아와 유여평의 실종을 알렸고 초하구진 주변 10여리를 다 뒤졌지만 여전히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주정일의 공부성적은 내리막 길을 달렸고 2001년 여름, 중학교 입학시험 성적이 좋지 못해 진에 있는 직업기술학교를 택하게 됐다. 부모들 살던 집은 너무 오래동안 방치돼 울안에 잡초가 무성하고 비가 샜으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서서 그 집을 헐값에 팔아버렸다.

가족들이 기회가 있을때 마다 유여평을 수소문하고 파출소에도 신고를 했지만 실종후 10여년간 종무소식이었으므로 다들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단념했다. 그러던 2010년 9월, 심양에서 일하던 주정일은 이모로 부터 어머니가 돌아왔으니 어서 다녀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유방이 붓기고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 갈념안하고 집에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만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이홍지에게 자기를 살려달라 기도만 하던 중이었다. 십여년만에 만난 어머니는 너무나 몰라보게 변했다. 거멓게 찌든 얼굴에 앙상한 체구, 정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눈은 움푹하게 패여 있었고 어깨도 제법 꾸부정했다. 10년 세월을 어떻게 보냈나 물었지만 유여평은 대답 한마디 안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자 했지만 “사부가 나를 도와 내 신체를 청리하는 중이므로 발정념만 하면 된다” 어머니는 우겼다. 가족들이 억지로 본계시 제 2인민병원으로 모시고 가 진단을 받은 결과 유방암 말기, 암세포가 이미 전이됐다 했다.

2010년 10월 12일,  겨우 45세인 유여평은 원만에 대한 끝없는 동경을 안고 세상을 떴다. 세상 뜨기전 그는 고해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을 구원해달라 이홍지에게 빌고 빌었다.

행복했던 주정일의 가정은 사교 법륜공의 침입으로 이렇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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