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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홍파 왜서 타향에서 객사?

2011-11-01 기원 하 다:Kaiwind Auteur:부문이

사홍파(史红波), 남, 1969년 6월 출생, 흑룡강성 목단강시 사람, 대련시 금주구 선진가도의 모  임대방에서 살다가 2011년 2월 28일 폐암임에도 치료거부로 사망했다.

사홍파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고 착한 애였다. 18세 되던 해 층층 시험과 선발을 통해 영광스러운 해방군전사로 됐다. 부대에서 사홍파는 우수병사였고 모든 면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했으며 군구에서 조직한 무예시합에서 “명사수” 칭호를 받았다. 제대후 그는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근무했고 결혼후 아들을 낳고 직장생활이 순리롭고 가정이 화목했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사홍파의 생활은 원래 이대로 계속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1997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사홍파는 무의식중 법륜공을 접촉하게 됐다. 처음 그는 법륜공에 큰 관심이 없고 단지 안일한 생활에 한가한 시간이 너무 많았으므로 심심풀이로 법륜공을 연공하는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공하는 친구들의 영향을 입어 내심적으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법륜공에 심취되기 시작했다. 그는 연공하는 친구들을 통해 법륜공 서적, 녹음테이프, CD 등을 구입하고 집에서 법륜공을 고심 연구했다. 이때부터 사홍파는 가정에 무관심하고 법륜공 연공에만 미쳐버려 입만 열면 법륜공의 원만, 성선득도 등 따위들 뿐이었다. 최종 출근을 그만두고 연공에만 주력했다. 아내의 거듭 권유도 듣는둥 마는둥, 참을래야 참을수 없는 아내는 이혼하고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단속이 없자 사홍파는 더 자유롭게 마음껏 연공에 전심할 수 있었다.

2002년 공우의 소개로 사홍파는 대련시 보란점(普兰店)의 공우 총비정(丛丕晶)을 알게 됐다. 고향떠나 대련에 온 그는 총비정과 함께 선후로 보란점, 와방점(瓦房店), 사강구(西岗区) 등지를 누비며 법륜공전단지를 배포했다. 2004년 그들은 함께 금주신구 선진가도 양광아파트단지 23호동에서 방을 임대하고 살았다.

생계를 유지하고 법륜공활동에 종사하기 위해 사홍파는 다른 사람과 손잡고 간이음식점 하나를 오픈했다. 처음 간이음식점 장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법륜공에 심취된 사홍파는 경영에는 무관심하고 벌어온 돈을 전부 법륜공서적과 녹음테이프, CD 등 물품을 구입하고 법륜공전단지 제작에 필요한 컴퓨터, 프린터, 팩스기, 등 설비구입에 써버려 음식점 유동자금에 문제가 생기게 됐고 그때부터 장사는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고 파트너는 실망한 나머니 음식점 경영에서 손을 뗐고 음식점은 문을 닫게 됐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홍파는 때를 건늬기가 일수고 굶을때가 많았다. 하지만 법륜공 전파에는 조금도 등안시 하지 않았고 법륜공전단지 제작이 그의 유일한 생활목표와 정신적 지주로 됐다.

건강이 날로 허약해진 사홍파는 저항력이 조금도 없었다. 자주 감기에 걸리고 고열을 앓았다. 기침에 온 몸이 부서지듯 아프고 열이 나 의식이 혼탁할 정도에 이르렀어도 그는 여전히 소업에 바빴다. 얼마후 허약한 사홍파는 폐염에 걸렸다.

사실 폐염이란 큰 병이 아니다. 치료만 견지하고 영양보충과 단련을 강화하면 폐기능은 천천히 회복을 찾게 된다. 그러나 사홍파는 건강에 관심이 없이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법륜공 연습과 전파에만 애썼다.

멀리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의 생활을 돌봤다. 날로 초췌해가는 아들을 보며 가슴 아파 병원에 가보라 권했지만 그는 오직 사부만이 자기를 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자기를 구하지 못하며 사부가 나에게 천목을 열어주고 법륜을 설치하면 나는 공덕원만하게 되고 비승성선(飞升成仙)하게 된다 했다. 지금은 사부가 나를 고험하고 있으며 연공하고 가부좌를 견지해야만 소업할 수  있고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면 소업에 지장 줘 내 원만이 지연된다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묵묵히 눈물만 흘릴뿐 더 말리지도 못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게다가 법륜공전파때문에 과로로 그의 폐염은 점점 악화돼 폐결핵으로 번졌다.

2010년에 이르러 사홍파의 폐결핵은 또 폐암으로 발전했다. 병통이 사홍파를 들볶아 원래 90킬로에 달하면 체중이 갑작스레 60킬로로 줄었고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누렇게 찌들고 지속되는 고열에 각혈까지 시작됐다. 온몸이 아파 견디지 못하면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어머니가 사온 약을 먹지 않고 병원치료를 거부했다.

2011년 2월의 마지막 날, 병마는42세 사홍파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렇게 건장하던 /‘명사수/’가 타향에서 객사, 고독한 노모와 이웃들의 탄식만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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