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고계란 2009년12월 촬영
고계란(高继兰), 여, 길림성 연길시 사람, 2009년 10월 개풍망을 통해 자신이 법륜공에 심취되었던 경력을 공개한바 있다. 3개월후인 2010년 1월 20일, 47세의 고계란은 유방암 증세 악화로 생을 마감했다.
고계란은 평시 여기저기 아픈데가 많았고 심장병도 있었다. 1999년 4월 법륜공을 연공하면 병이 생기지 않고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소업하는 것이므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을 필요없고 또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정이 덕을 본다”는 감언리설에 속아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아주 열심히 연공했다. 연공후 스스로 증상들이 많이 완화됐다는 느낌에 장기 복용하던 단삼적환(丹参滴丸)과 아스피린을 중단하고 대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부좌 연공하고 법 공부를 하고 그 외의 활동에는 일절 참가하지 않았다.
국가에서 법륜공을 취체한후 남편, 아들, 시어머니 등이 그렇게 말렸고 빌다시피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을 자신의 원만을 방해하는/‘마(魔)/’로 여겼다.
매일 연공 외 그가 하는 일이란 법 공부였다. 지어 남편과 아들을 무시하고 별도로 방 하나를 임대해 나가 살면서 법륜공 전단지를 붙이고 배포하는 일을 했다.
2001년 1월, 이홍지 경문의 감언리설에 넘어간 그는 원만할 날이 멀지 않다 믿고 자신의 /‘홍법/’진전에 박차를 가하기로 결심하고 공우들과 모의하고 남몰래 북경에 가서 천안문광장에서 /‘법륜대법이 좋다/’는 현수막을 내 걸었다.
북경에서 돌아온후 그는 여전히 공우들과 어울렸다. 말리다 못해 남편은 이혼을 제출했고 그는 중학교를 중퇴한 아들의 부양권을 남편에게 넘기고 혼자서 임대방 생활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 단속이 소홀한 아들은 싸움을 하다 고의상해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됐다.
그후 몇 년간 그는 계속해서 법륜공을 연공했고 자기 몸에서 나타나는 불편한 증상들을 죄다 소업으로 간주했다. 2009년 4월 형제들이 아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그들 억지로 연변병원에 데리고 갔다. 이미 유방암 말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고계란의 죽마지우 이수련은 고계란이 원래 활달하고 밝은 성격에 낭만적인 여자었는데 연공후부터 사람이 편집적이고 생각이 경직돼 버려 우리가 법륜공의 문제점을 말하면 화를 내며 우리는 저층차의 사람이라 죽어 감옥 아니면 쓰레기장으로 가고 자기는 금빛이 반짝이는 천당으로 간다 말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젊은 딸을 앞세운 고계란의 친정 어머니는 필자 앞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연공 초기 란이는 가끔씩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차했고 기껏해야 협심증이어서 약을 먹고 휴식하면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는 병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법륜공을 믿고 또 거기에 심취돼 버렸다. 병을 고치겠다 연공했는데 연공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집도 없는 세방살이에, 아들마저 감옥에 들어가고 자기도 암에 걸려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