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페이지  >  谣言与真相  >  法轮功侵犯人权案例

누가 백효영을 죽였는가(포토)

2011-09-20 기원 하 다:Kaiwind

2010년 12월 7일, 화북유전종합병원 퇴직인원 백효영(白晓英)은 폐결핵으로 인한 다기관 기능 부전으로 병원에서 18시간 응급치료를 받다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당시 법륜공 산하 사이트에서는 백효영이 박해로 죽었다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백효영, 여, 1956년 10월 감숙성 옥문에서 출생, 중학 학력, 1979년 직원모집때 화북유전종합병원에 취직했고 영양과에서 영양사로 근무하다 1992년 종합병원 보위과 소속 주민위원회로 조동, 2006년 10월에 퇴직했다.

백효영 사망건을 두고 개풍망(Kaiwind) 기자는 백효영의 동료며 화북유전종합병원 보위과 직원인 곽문금(霍文金)과 화북유전종합병원 부주임의사며 보건과 주임인 장밀(张密)을 만났다.

백효영 생전

곽문금과 백효영은 1997년 서로 알게 됐고 곽문금이 보위과로 조동된후 업무관계로 주민위원회와 연락이 잦아지면서 둘 사이도 접촉이 많아졌다. “백효영은 말수가 적은 편이고 일에 착실했다. 천식이 있었으므로 늘 약을 먹고 있었고 학생인 딸 하나,  세식구는 화목한 편이고 생활형편도 괜찮았다”.

1998년말 몸을 건강히 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백효영은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나라에서 법륜공을 취체한후 한때 그는 연공을 중지했었다. 2000년 1월 공우들의 부추김으로 재차 연공하게 됐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법륜공에 심취되어 스스로 헤여나오지 못했고 남편 곽안민(郭安民)까지 연공에 동원시켜 둘이서 함께 전단지 배포하러 다녔다.

곽문금이 백효영에게 “법륜공을 연공하는 목적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인데 왜서  전단지까지 배포하느냐?” 물었을 때 “우리가 이러지 않고서는 원만할 수 없다” 대답했다.

2008년 9월 백효영은 폐결핵에 걸렸다. 그러나 그는 법륜공의 강신건체와 소업거병(消业祛病)을 믿고 치료나 약이 없이도 병이 스스로 낫게 될 것이고 연공인은 누구나 이홍지 법신의 보호를 받는다 믿었다. 이웃이나 퇴직전 동료들이 어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 권했지만 그는 고집을 부리고 매일 <전법륜>을 읽고 이홍지의 녹음을 듣고 가부좌 연공을 하고 연공과 /‘법 공부/’에 모든 정신을 팔았다.

2010년 7월, 곽문금과 동료 왕홍용이 은행에 일보러 가다 그의 거처를 지나면서 우연히 건물밑에서 이웃과 함께 산책하는 백효영을 만났다. 주동적으로 곽문금과 인사를 하는 백효영의 얼굴은 검누렇게 떴고 병색이 완연했다. 관문금은 “퇴직을 했어도 해마다 건강검진을 무료로 해 주는데 한번 진단을 받아야 겠다.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는데 누구보다도 편리하지 않냐” 백효영이를 권했다.

그러나 대답은 “괜찮아, 난 지금 아무 약도 먹지 않아, 사부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였다. 옆에 있던 이웃도 어이가 없어 머리만 흔들었다.

그해 12월 7일, 곽문금은 백효영이 병세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병원노조협회 직원과 함께 후사 준비에 서둘렀다.

알고보니 백효영이를 병원으로 이송해 입원시킨 사람은 그의 이웃인 종합병원 부주임의사며 보건과 주임인 장밀이었다. “전에 나를 찾아와 병을 봐달라 한적 있다. 폐결핵이었다. 수차 그를 입원치료를 받으라 권했고 약도 떼줬지만 그는 먹지 않고 입원도 하지 않아 시간을 지체해서 병을 악화시켰다. 12월 6일 그의 집에 그를 보러갔다가 병이 위중했으므로 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를 받게 했다”.

병원에 입원하자 병원측은 병세 위중 통지를 냈다. 병원에서 18시간 응급치료를 받다 12월 7일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폐결핵으로 인한 다기관 기능 부전이었다. 장밀은 백효영은 임종까지도 MP3으로 이홍지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말했다.

分享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