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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업이 나를 종신 장애자로

2011-08-15 기원 하 다:Kaiwind Auteur:목상토(구술) 오군(정리)

 

병석에 누워있는 목상토

나의 이름은  목상토(缪祥土), 46세, 절강성 강산 (江山)시 장촌(张村)향에 살고 있다. 부친은 퇴직 교원이고 모친은 농사일에 종사,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큰 걱정없는 생활이었다. 28세 되던 해에 나는 강직성 척추염에 걸려 적극 치료를 통해서야 안정됐고 생활에 별 지장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나한테는 항상 꿈이 있었다. 일생을 아주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고 주변의 재원을 충분히 이용한 특색있는 농업을 발전시켜 치부를 실현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등등, 그러나 갑작스런 법륜공의 무단침입으로 나의 모든 희망이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2000년 7월의 어느날, 부친의 옛 동료인 류선생이 우리집에 놀러왔다. 마침 부친이 외출중이고 나혼자 집에 있었다. 그는 나와 법륜공을 주제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세상의 모든 병을 완치할 수 있는게 법륜공인데 나보고 한번 해보지 않겠다 물었다. 그날 그는 <법륜대법의해>  <전법륜> 등 서적과 CD도 몇개 들고 왔었다. /‘백병통지/’? 세상에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웃으며 거절했다.

그런데 그는 그후부터 자주 나를 찾아왔고 나에게 법륜공은 백병통지고 연공하면 소업을 할 수 있으며 /‘성신성불/’ 할수있다는 등 이념을 계속해서 주입시켰다.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리에서인지 은연중 감화되어 나는 생각이 바뀌게 됐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부친과 오랜 동료인 그가 나를 속일리 없고 더더욱 나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병에 좋다는데 한번 믿어보는 것 쯤이야? 시험삼아 나는 그와 함게 가부좌 연공을 시작했다.

매일 규칙적인 활동을 진행해서인지 2주후 아프던 다리와 허리 통증이 호전인것 같았고 기분도 좋았다. 나는 또 책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이홍지는 당신이 겁난을 당했을때 그 자비의 마음이 당신이 어려운 고비를 넘도록 도와줄 것이며 동시에 나의 법신이 당신을 보호할 것이고 당신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며 난은 반드시 넘기게 할 것이다라 말했다. 천진한 나는 병을 없애고 재앙을 면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줬다 믿고 연공의 결심을 더더욱 굳게 다졌다.

전심 수련으로 하루빨리 소업하고 진정한 대법제자로 되기 위해 나는 심성과 동작을 동수해야 한다는 이홍지의 요구에 따라 법학습과 가부좌 연공을 매일의 필수과목으로 삼고 낮에는 4시간씩이나 가부좌하고 밤에는 또 밤새도록 법을 학습하고 경문을 외웠다. 그동안 나는 늘 병통에 시달렸지만 견디기 어려울때마다“수련인으로 당신은 응당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가를 잘 알아야한다. 바로 그것이 왔다. 당신더러 그 업을 갚으라 한다. 이때 자신을 잘 파악해야 하고 심성을 지켜 일을 해소해야 하고 그가 당신을 도와 소업함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사부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므로 나는 사부가 이미 모든 고통과 어려움과 질병의 근원을 아주 똑똑하게 말했다 아둔하게 믿고 전심 수련만 하면 필연코 소업할 수 있다 깊이 믿어야만 된다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신속 심연에 빠져 들어갔다/…/…

하루빨리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나는 철저히 소업의 요구에 따라 다시는 약을 복용하거나 진료를 받지 않고 오로지 소업으로 병을 없애고 /‘상층차/’하고 /‘원만/’을 얻기만을 바랬다. 약치료를 중지하고 매일 장시간을 가부좌하고 연공한 결과 나의 병세는 점점 악화됐고 터질듯한 전신통증에 시달리다보니 사람이 멍청해지고 수척해갔다. 그러나 사부는 수련중에서 소업하고 소업하면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어디에 그리 편하게 공이 늘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당신의 /‘집착심/’을 없앤단 말인가? 고 말했다. 나는 계속 사부의 말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힘겹게 수련을 견지했다.

2000년 9월에 이르러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중해갔으므로 부모형제들이  가슴아파했고 마음씨 고운 이웃에서도 나를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 반복 권했다. 그러나 나는 아예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딴에는 “당신들은 모른다. 이런 증상은 정상이다. 사부가 나를 위해 신체 청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약을 먹으면 /‘업력/’을 짓눌러 내려하게 하며 나는 보응을 당하게 된다. 당신들은 나를 지금 해치고 있다. 더는 나를 간섭하지 말라. 칼을 내 목에 갖다 댄다 해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생각했다. 나는 “능견정자, 업가소(能坚定者,业可消)”를 반복으로 념하며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랬다.

이렇게 나는 10월 상순까지 버텨왔다. 그날 나는 여전히 평시와 마찬가지로 집에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을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눈앞이 아찔해나고 시선이 모호해지면서 창백한 얼굴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메스꺼워 토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정신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부친이 나를 제때에 발견해 이웃들과 함께 나를 향 위생소에 이송했다. 의사의 진단에 나는 강직성 척추염  합병증으로 유발된 미열, 무기력, 제중하강과 빈혈 등으로 초래된 일시적 혼미라 했다. 의사는 “아들의 병이 이토록 중하도록 왜 약을 먹이지 않았나” 나의 부모를 나무랐다. 며칠동안의 전력치료를 통해 나는 겨우 고비를 넘겼다.

깨난후 흐리멍덩속에서 내가 한 첫마디 말이 “사부가 나를 만나줬어요. 나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어요”였다. 이 정경에 부모형제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친은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이 바보야, 너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번 했어. 무슨 사부고 뭐냐, 알기나 해?!”라며 울먹였다

가족들의 보살핌으로 나의 병세는 많이 회복됐다. 부모형제들이 기어코 나 보고 큰 병원에 가서 재검사하자 했다. 의사도 우리들에게 항주 큰 병원에 가서 세부검사를 받으라 제의했다. 큰 병원 전문가들의 대진 결과 나의 병은 이미 최적의 치료시기를 놓쳐버렸으므로 종신장애자 신세를 면치 못할것이라 했다. 그 말에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고 몇번이고 혼자 죽을 생각까지 했다. 다행히 부모형제들의 정성들인 간호로 나는 하루하루 절망속에서 헤여나올 수 있었다.

차츰 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이홍지가 나를 보호한다 말하지 않았는가? 왜 내가 거의 죽게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는가? 내가 전심 수련으로 바꿔온것이 거병소업(祛病消业)이 아리라 병세 가중이 아닌가? 그래 수련이라는게 나를 일찍 죽어라는 것인가?”

나의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심심 산골을 벗어나 치부를 실현하려던 꿈은 이미 환상과 지나친 욕망으로 밖게 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병석에 누워있고 노동능력 완전 상실이며 중할때는 누워 일어나지도, 밥도 혼자서 먹지 못한다. 좀 나았다 할때도 지팽이를 짚고서야만 겨우 몇걸음을 옮길 수 있다. 하루하루 나이만 들고 늙어서 의지할데 없는 내 처량한 정경을 생각할때마다 나는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무력감과 고통속에 빠지군 한다. 바로 법륜공이 나의 희망을 말살했고 나의 건강과 행복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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