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페이지  >  谣言与真相  >  法轮功侵犯人权案例

연공에 주화입마, 화상으로 손가락 절단까지

2011-03-08 기원 하 다:Kaiwind Auteur:백운비

친구 모임이 있어서 길림성 반석시에 갔다가 유보덕(刘宝德)이란 조기 법륜공연공자가 수련에 주화입마되어 수련성선(成仙)됐다 믿고 부뚜막에 기여들어가 분신자살로 승천을 시도하다 결국은 손가락 일곱개를 상실하고 평생 후회만 남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직접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유보덕, 1964년 7월 21일 출생, 반석시 홍기령(红旗岭)진 십리(十里)촌 마금장둔 (么金厂屯)촌민, 아들 딸은 지금 길림성 장춘시와 백산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유씨부부가 몇십무의 밭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은 유씨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촌장 사영규(谢永奎)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촌장 사영규의 안내로 2009년 10월의 어느날 오전 우리는 홍기령진 십리촌 마금장둔에 있는 유보덕의 집을 찾아갔다. 마을 제일 남쪽에 찌그러져가는 외로운 초갓집 한채가 옥수수밭속에 파묻혀 있다 시피했다. 안내자가 없었다면 정말로 찾기 어려울것 같았다. 마침 집 대문은 잠겨있었고 그의 집 문앞에서 반시간 남짓 기다렸으나 유씨를 만나지 못했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유씨부부가 아침 일찍 옥수수 따러 산에 갔다 했다. 언제 돌아올지 몰라 우리는 오후에 다시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오후에도 유씨부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유감스러웠다. 촌장 사영규는 자기가 유씨 상황을 잘 알고 있으므로 궁금한점 있으면 얼마든지 소개해줄수 있노라 했다. 이어 나와 사촌장은 화두를 열었다.

마금장돈 마을 사람들 거의가 조선족이고 유씨는 몇 명 안되는 그중의 한족 촌민으로 평시에 이웃 돕기에 발벗고 잘 나서서 이웃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아 1998년 4월부터 강신건체(强身健体)의 희망을 품고 다른 사람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법륜공을 연공하게 됐고 심취됐다. 그때부터 그는 농사일을 제쳐놓고 매일 수련에만 몰입했고 아이들의 공부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주화입마됐고 자신이 이미 성선(成仙)한줄 알고 승천의 길을 찾아 헤맸다.

촌장과 한창 이야기중에 유씨의 아내 양숙분(梁淑芬)이 돌아왔다. 우리들이 찾아온 뜻을 알자 그는 법륜공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유씨가 장애자로 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의 가정도 이처럼 못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모든게 다 법륜공 탓이라 치를 떨었다. 양숙분의 기억에 유씨는 1998년 4월부터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점차 심취, 어느날 정말로 주화입마됐다.

그해 7월 9일 밤, 부뚜막에 불을 지피고 밥을 하던 유씨는 자기가 수련성선되어 분신자살로 승천할 수 있다 생각하고 나와 두 아이의 눈을 피해 손과 머리를 부뚜막에 밀어넣고 불속으로 기여들려 했다. 분신자살로 승천의 목적에 달하려 했던 것이다. 이상한 동정과 코 찌르는 냄새에 나와 아이들은 깜짝 놀라 달려나와 부랴부랴 유씨를 불에서 끄집어내고 몸에 달린 불을 껐다. 이웃의 도움으로 불에 타 볼 모양없게 된 유씨를 길림시 강북화공(江北化工)병원 화상과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유씨가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치료시기를 놓쳤고  호전도 되기전에 가족들과 의사의 극력 반대도 마다하고 고집부리며 집에 돌아와 화상을 입은 손가락이 감염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후에 가족들이 길림시 주군 제 222의원 화상과와 길림성 화전(桦甸)시 화상의원을 모시고 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유씨가 치료에 협조를 하지 않아 치료지연으로 골수염으로 전이 되었으며 절단수술까지 받게 됐다. 멀쩡하던 두손이 두 엄지 손가락과 식지 하나 밖게 남지 않았으며 기본 노동능력을 상실했다. 

 

 
화상으로 장애인이 된 유씨의 손

分享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