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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비승’이 류밍수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0-09-13 기원 하 다:Kaiwind Auteur:한워이

나의 이름은 한워이(韩炜)며 쓰촨성 루저우(泸州)시 룽마탄(龙马潭)구 룽샹(龙祥)아파트단지 2구에 살고 있다. 량쿵신(梁孔鑫)과 류밍수(刘明书)부부는 2005년 12월 부터 우리집을 임대해 살았다. 2006년 9월 17일 정오 임대요금을 받으러 갔던 나는 마침 류밍수가 5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현장을 목격했다. 머리를 먼저 땅에 박았고 피가 낭자했으며 인차 숱한 사람들이 현장을 둘러쌌다. 떨어진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량선생이 건물에서 부랴부랴 달음박질쳐 내려와 류밍수를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당시 그 참상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애당초 그들이 방을 임대하겠다 왔을때 류밍수를 보는 첫 순간 뭔가 좀 이상해 보였다. 비들비들한 모습에 얼굴이 누렇게 시들었고 눈빛이 흐리멍덩, 그들에게 방을 임대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량씨가 거듭 애걸하는 바람에 최종 임대줬다. 류밍수가 법륜공을 수련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할줄 알았더면 아무리 높은 임대요금을 준다해도 절대 방을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참극발생후 사람들이 그 방을 임대하거나 사려다도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다들 포기했다. 지금은 임대도 안나가고 팔래야 팔수도 없고해서 할수없이 우리가 살고 있다. 매일 한 밤중에 전에 누가 이 방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군한다.

근래 나는 개풍망에서 량쿵신선생이 공소한 </‘원만/’위해 내 아내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이란 기사를 읽고 생각이 많아진다. 행복하고 화기애애하던 가정에서 법륜공을 수련하고 이홍지의 터무니없는 역설을 믿고 주화입마되는 바람에 최종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다니, 어쩌면 천안문분신사건과 그토록 유사한지! 류밍수는 /‘원만/’을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남기고 간 끝없는 고통과 량쿵신노인에게 남긴 쓰라린 회억과 무한한 고독은? 법류공이란 도대체 무슨 /‘공/’인지? 세상사람들에게 불안과 깊은 사색를 던진다.

류밍수, 여, 스촨 루(泸)현사람, 소학 학력, 1954년 3월 3일 출생, 우체국 퇴직종업원,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 법륜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996년 부터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2006년 52세 나이에 자살을 하기 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류밍수의 /‘10년 원만/’의 노정은 초기 이홍지의 “몸을 건강히 하고 병을 없애며” “좋은 사람이 되기”를 믿던데로 부터 /‘원만설/’에 깊에 빠져 최종 주화입마의 지경에 까지 이르렀고 드디어 2006년 9월 17일 13시 5분 /‘백일비승/’의 참극을 빚어내고 말았다.

류밍수의 /‘10년 원만/’의 노정은 완전히 이홍지의 /‘세가지 일/’을 잘 해야한다는 요구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는 정진하고 하루빨리 /‘원만/’하고 하루빨리 /‘백일비승/’을 실현하기 위해 불물을 가리지 않고 /‘법을 학습하고/’ /‘연공/’하고 지어 애착을 느끼던 직장도 버리고 46세에 결연히 미정년퇴직, 수련에 전념했다. 수련기간 죽마지우 남편이나 철들고 착한 아들이 그토록 입이 닿도록 권했건만 그는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별수없이 남편마저 직장을 버리고 저기여기 이사다녔지만 여전히 류밍수의 수련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는 이미 끄떡없는 이홍지의 제자로 돼 버렸던것이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불법집회와 연공으로 2000년 4월 공안기관의 치안구류처리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이홍지의 요구대로 /‘걸어나갔고/’ 자기가 /‘정진/’했다 생각했다.

장시간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한 탓에 혈액순환장애로 늘 눈앞이 아찔해났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정념/’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친인들의 권유도 마다하고 자기 친 아들과 얼굴을 붉히고 육친의 정을 버렸다. 그러나 그는 “수련은 곧 이 마난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는 이론으로 가족들을 대하고 이를 번듯하게 /‘집착을 버린다/’ 했다.

그의 신경쇠약증은 결코 법륜공수련으로 경감되지 않았다. 약 복용을 중단한 관계로 갈수록 악화됐고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늘 실면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이를 /‘소업/’이라 생각하고 불편은 정상이며 수련노정에서 직면한 또 한차례의 고험이라 받아들였고 가로등이 켜져 있어도 /‘사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고 자기를 향해 /‘발공/’하므로 /‘원만/’이 코앞에 다가온다 생각했다.

투신자살전 2006년 6월 그는 곧 /‘원만/’한다며 농약을 들이마셨다. 다행히 옆에서 제때에 발견, 응급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은 영영 2006년 9월 17일 정오에서 멈춰버렸다. 허황한 /‘원만/’의 꿈속에서 류밍수는 최종 /‘백일비승/’했다. 또 한차례의 인간 비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류밍수관련 스캐닝 문서

Kaiwind.com, 20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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