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정월 초 이튿날 사촌 누이가 폐기처리된 벽돌 굽는 가마에 들어가 죽었다는 사촌 형부의 전화를 받았다. 비보를 접한 나는 눈송이 흩날리는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촌 누이는 나의 계몽선생님으로 그의 자상한 교육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나는 대학까지 갈 수 있었고 대대로 내려오면서 농민이었던 운명을 개변했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법륜공때문에 나의 사촌 누이는 새해 폭죽이 막 터지는 시각에 영영 눈을 감았다.
나의 이름은 오세성, 하남성 식(息)현 조황림(曹黄林)향 풍장(冯庄)촌 사람으로 올해 32세다. 지금 현성의 모 행정단위에 근무하고 있다. 사촌 누이 이름은 이숙매, 식현 조황림향 중심소학 교사, 1962년 5월 출생, 전문학교 학력이다. 조황림중심소학은 나의 모교이며 소학교 3학년때 그는 우리반 담임을 맡았고 3학년 어문을 가르쳤다. 3학년에서 5학년까지 나는 사촌 누이의 보살핌속에서 3년간의 잊을 수 없는 동년시절을 보냈다. 어릴적의 나는 장난이 심하고 공부에 게을러 3학년이 다 되도록 한어병음마저 숙달하지 못했다. 그는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나를 자기집에 불러다 놓고 한어병음 보충수업을 진행, 덕분에 나는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병음으로 정확한 발음을 표기할 수 있었다. 사촌 누이는 나의 공부에 특별히 엄했으며 작문마다 일일이 자상하게 수정해주고 틀린문구나 틀린철자를 바로 잡아주었다. 누이의 정성어린 교육으로 나의 공부성적은 빨리 제고됐고 그 기초로 순리롭게 대학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누이는 나한테 지식의 대문을 열어주었고 운명을 개변하고 미래의 인생을 지향하도록 나를 이끌어 줬다. 나는 그 고마움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다.
1996년 봄, 그는 장기간 어둡고 축축한 사무실에서 근무한 관계로 류머티스성 질환에 걸려 온몸이 쑤시듯 아파났다. 형부가 그를 데리고 사처로 병치료를 다녔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이때 정년퇴직을 한 학교동료가 그를 찾아와 “류머티스성 질환은 아주 치료가 힘든 고질병이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법륜공을 수련하는 것이다. 법륜공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며 연공하면 온 가정이 따라 득을 본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 이 공법을 배우고 있다”라 했다. 반신반의해하는 사촌 누이의 표정을 읽은 동료는 그를 끌고 길 옆의 한 공터로 나왔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고 숱한 사람들이 여러가지 동작을 하고 있었다. 보도원이 열성적으로 반기며 법륜공 수련의 여러가지 좋은 점을 소개했다. “법륜공을 연공하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할 수 있고 백병을 통치한다. 법륜공은 진선인을 주장하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며 그 자체가 일종의 진보적인 종교다”. 수련을 하고 있던 공우들도 욱 몰려와 너도나도 자기들의 수련심득을 말해줬다. 보도원의 열성적인 소개와 공우들의 부추김으로 사촌 누이는 주저없이 당장에서 돈을 꺼내 <전법륜>과 녹음테이프, 그리고 사부 이홍지의 초상화를 샀다. 보도원은 입문이 빠르고 이해력이 높은 누이에 대한 특별혜택이라며 책 한권을 사면 공짜로 한권을 더 준다 후한 대접을 했다. 감동된 나머지 떨리는 두손으로 책을 받아안고 집에 돌아가 식구들과 친척들을 다 동원해 법륜공을 수련하게 하겠다 말했다.
류머티즘은 기후와 많이 관련된다. 날씨가 무덥고 축축할때 증상이 심한 편이고 날씨가 맑고 건조할때면 어느 정도 증상이 경감된다. 날씨가 맑고 따스해나면서 사촌 누이의 통증은 많이 경감됐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법륜공의 공력덕에 얻은 효과라 믿었다. 법륜공이 가져다준 복음이라 생각하고 더더욱 /‘연공과 법학습/’에 몰입했고 이홍지를 신처럼 모셨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부의 초상화를 향해 가부좌하고 연공하고 엎드려 절을 했다. 소위 /‘원만/’을 추구하기 위해 단체연공 홍법활동이라면 아무리 멀어도 빠짐없이 꼭꼭 참가했다. 그런 그는 학교수업과 집안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공전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린 그의 변화를 두고 다들 탄식했다. 학교책임자선생님이 여러번 그를 찾아 개별담화를 진행, 정상인의 생활로 복귀하라 권했건만 사촌 누이는 반석마냥 견인했다. 그는 외계요소의 교란에서 흔들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것이 사부에 대한 가장 큰 존경이고 법륜공에 대한 최대의 신앙과 집착이라 했다. 수차 교육끝에 효과가 없게 되자 학교에서는 부득이 사촌 누이에게 미정년 퇴직수속을 밟도록 했다.
1999년 나라에서 법륜공을 단속하자 그는 도저히 달통되지 않았다. 식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현지 보도원의 인솔하에 공우들과 함께 여러차례 북경으로 가서 호법활동를 진행했다. 그 기간 형부, 조카 그리고 나, 다들 연공을 포기하라 권했건만 번마다 된 욕만 얻어 먹었다. 그는 나를 특별히 용서할 수 없다 했다. 어렸을적 자기의 도움을 그렇게 받고도 자기말대로 법륜공의 수련대오에 가입하지 않고 도리여 자기를 수련하지 말라 말리고 그의 신앙을 존중해 주지 않고 백은망덕하다 했다.
장시간 가부좌하고 편집적이고 생활이 불규칙적이어서 사촌 누이의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우리는 억지로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가 전면적인 건강검진을 받았다. 과거의 류머티즘 외에도 당뇨병, 고지혈증, 뇌동맥 피순환장애 등 병도 있었다. 당뇨병은 더 발전해 일주일에 한번씩 인슐린을 맞아야만 했다. 억지로 주사를 맞힐때마다 누이는 더 심한 반항과 욕설을 퍼부었다. 자기는 사부의 /‘법신보호/’를 받기에 주사나 약이 필요없고 연공에 열심할수록 병이 빨리 낫는다 했다.
2009년 음력 12월 28일, 새해 벽두에 그가 갑자기 실종됐다. 형부가 온 식구를 다 동원해 찾고 공우들 집집에 들려 알아보았으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다들 안전부절 못했다. 2010년 음력 정월 초 이튿날 누이를 아는 마을사람이 설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소변을 보려고 폐기된 벽돌 굽는 가마터로 갔다. 찰나 놀라 /‘앗/’을 터뜨리며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사촌 누이를 발견했던 것이다. 사촌 누이는 비스듬히 벽에 기대앉아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옆에는 종이 쪽지 한장이 놓여 있었다. “식구들이 연공을 그냥 교란하므로 그들이 찾지 못할 곳에 와 /‘소업/’합니다. 제가 추구하고 있는 /‘원만/’과 /‘높은 층차로의 제고/’가 곧 실현됩니다. 사부님,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가장 충실한 신도입니다.”
정월 초 나흩날 사촌 누이 장례를 진행했다. 무덤앞에 선 나는 고개들어 눈앞의 익숙한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았다. 동년의 기왕사들이 어렴풋이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눈물이 나의 두볼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Kaiwind.com, 201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