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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부(护身符)’가 내 남편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0-06-12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이금령

남편은 10여년이 넘도록 법륜공수련을 독실히 했건만 법륜공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만년을 만끽 향수할 한창 나이에 법륜공의 /‘소업거병(消业祛病)/’, /‘법신보호/’를 믿는 바람에 2010년 2월 심장병 돌발로 별세했다.

남편의 이름은 배경명(裴景明), 1948년 출생, 하남성 개봉시 공상계통의 퇴직종업원이다. 1998년부터 법륜공을 10여년간 수련했다. 전에 우리집 근처의 화학비료공장 구락부 마당에 법륜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법륜공은 /‘소업/’으로 병을 치료해주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제자로 되면 사부님이 그들의 배속에 법륜을 내려주고 끊임없이 그들의 신체를 청리(清理)해줌으로써 일종의 무병상태에 이르게 한다 했다. 남편은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어 병치료를 위해 적잖은 돈을 썼으나 일진일퇴의 병세를 거듭했다. 우리는 시험삼아 수련대오에 가입했다. 나도 남편과 함께 보도소를 찾아가 <전법륜>, <홍음> 등 서적과 연공복, 초상화 등 연공용품들을 구입했다.

일정한 기간 단련후 우리들의 건강상태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남편은 옛날보다 원기가 훨씬 왕성해보였다. 이런 효과는 모두 정기적인 단련을 견지한 결과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이홍지가 우리한테 소업을 해 준 결과라고 생각했고 법륜공을 수련한 공로라 생각했다. 남편은 “사람의 병은 업력때문에 생긴것이고 병을 보거나 약을 먹으면 업력을 짓눌러 내려가게 하므로 병은 영원히 제거될 수 없고 나을 수 없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설교를 철석같이 믿고 수련에 더더욱 열을 올렸다. 낮에는 /‘동수/’들과 함께 연공하고 /‘법학습/’을 하고 저녁이면 혼자 집에서 <전법륜>과 <홍음>등 서적과 명혜망에서 다운받은 경문들을 반복적으로 송독했다.

1999년 7월 국가에서 법륜공을 단속하기 시작한 후 주변 사람들과 나는 연공을 그만뒀지만 남편은 계속 집에서 연공했다.

2009년 5월 남편은 심장병 발작으로 병원에서 1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후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했다. 의사의 신신당부로 나와 딸은 남편의 병이 재발할가봐 속효구심환(速效救心丸)을 넣은 작은 약병을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러나 이때의 그는 이미 사부의 법신이 지켜준다는 설교에 빠져 헤여나올 수 없었다. 이홍지의 /‘법신보호/’에 심취된 그는 속효구심환을 법륜공의 호신부로 바꿨다. 심장병이 발작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일단 발작만하면 수시로 생명위험이 있다 의사가 말했으니 구심환은 언제나 꼭 몸에 지참하고 다녀야된다 여러번 권유했으나 대수로 여기며 수련인이 호신부를 달고 다니면 사부의 법신이 시시각각으로 지켜주기 때문에 아무일도 없을것이라 했다.

2010년 2월 5일 가부좌하고 앉아있던 남편은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부위가 불편 등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부랴부랴 달려가 그의 거위털 자켓을 열고 속효구심환 약병을 찾았다. 그러나 꺼낸것은 법륜공의 호신부었다. 나는 안방으로 달려가 구심환을 가져다 그의 입가에 갖다 댔지만 좀체로 먹을렴 안했다. 그는 간신히 김빠진 소리로 “조급해하지 마, 호신부가 있으니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지켜줄거야. 아무일 없을거야”라 했다. 그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10여분간이나 지체됐다. 그러던 그는 바닥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부름소리를 듣고 달려온 이웃들이 120구급차를 불렀다. 20분후 구급차가 도착, 그를 병원응급실로 실어갔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중환자실을 걸아나오지 못했다.

의사는 남편이 심근경색인데 의사의 말대로 제때에 구심환을 복용하지 않아 최적의 구급시간을 놓쳐기때문이라 한다. 그말에 나는 비통을 억제할 수 없었다. 사실 내 남편은 법륜공의 호신부 때문에 죽었고 이홍지의 /‘법신보호/’ 때문에 죽었다.

 (Kaiwind.com, 20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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