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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공”이 나의 가정을 훼멸시켰다

2009-10-09 기원 하 다:Kaiwind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지도 반년이 넘는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나의 절절한 그리움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인자하시고 섬약한 어머니의 모습이 꿈결에서도 자주 떠오르는데 깨여나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베개잇을 적신다. 어머니의 사망과정을 돌이켜 볼때마다 슬픔과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이 나를 괴롭힌다.

더더욱 나는 “법륜공”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억누를 길 없다. 바로 “법륜공”이 나의 어머니를 해쳤고 “대각자(大觉者)”가 우리가정을 훼멸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길림성 화룡시의 한 편벽한 시골의 평범한 농민으로 서리파라 부른다. 본래 나에게는 단란하고 화기애애한 가정이 있었다. 한생을 근면하고 소박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은 고생스레 나를 애지중지 키웠고 학교교육도 받게 했다. 부유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어도 부모님의 살뜰한 사랑과 보살핌속에서 나는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자랐다. 초등중학교 졸업후 나는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들과 함께 밭도 다루고 농한기에는 도시로 나가 일도 했으며 겨울에는 또 부업으로 돈을 벌었다. 편벽한 시골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부유하다 할수있는 경제형편이어서 생활은 향기가 풍겼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한 비열한 “대각자”의 출현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생활의 꿈이 풍비박산나고 커다란 불행이 들이닥쳐 나를 의지가지없는 고아로 되게 할줄을/…/…

비극은 1997년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어머니의 성함은 허평이며 본토박이 농민이다. 어려서부터 잔병이 많았고 선천적으로 뒷잔등에 혹이 생겨 생활상 많은 불편을 겪었다.

1997년의 어느 하루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는 다른 사람한테서 서진에 있는 “법륜공”을 수련하는 “대각자” 한 사람이 곱사등이 병을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따라 “대각자”란 사람을 만나보았다. 소위 “대각자”라고 자칭하는 그 사람은 스승 이홍지를 따라 “법륜공”을 수련했는데 이미 아주 높은 공력을 쌓아 믿음을 받는 손색이 없는 이홍지의 제자로 사람들 병을 치료해준다 불어댔다. 그는 또 이홍지는 우주의 주불(主佛)로 신통하고 고명하며 수련자들을 도와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므로 수련자는 더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으며 이홍지가 운명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선불”(成仙做佛)로 될 수 있다고 선양했다. 그는 나의 어머니에게 이홍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매일 몇시간의 “법륜공”수련을 견지만 하면 병이 나을 수 있고 때가 되여 자기가 발공을 몇번 하면 굽었던 등도 곧게 펼진다고 억설했다. 마음 어질고 건강을 갈망하는 어머니는 그의 횡설수설에 금방 솔깃해났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매일 정좌하고 앉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번마다 연속 몇시간씩 견지했고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매일 “전법륜”(转法轮)이란 책을 보고 또 보았고 이홍지의 소위 “진,선,인”, “상층차”, “명리정(名利情)”, 수련으로 “원만”하여 푸른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따위의 말에 완전히 매혹됐다. 근면하고 약삭빠르던 어머니는 그때부터 농사일과 가정일에 전혀 무관심하고 식구들 생활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않았다. 원래 화기애애하던 우리가정은 날이 갈수록 냉기가 돌았고 웃음소리라곤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언녕부터 이상한 기미를 눈치챈 아버지는 “법륜공”을 수련하지말라 그렇게 말리고 법륜공은 사람을 해치는 사악한 공이라고 거급 말했지만 어머니는 마이동풍으로 여기고 스승님이 “대법을 파괴하는 자는 바로 마귀다” 말했다면서 아버지를 수련을 방해하는 마귀라고까지 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도리를 설명해드리며 정상인의 생활로 돌아 오시라 권하면 어머니는 쌀쌀한 표정으로 “스승님이 말하기를 오늘은 내가 너의 친인이지만 다음 세상에 가서는 누구의 친인이 될지 네가 누구의 자식이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일세의 연분일 따름이다”라 했다. 내가 아무리 권해도 막무가내었다. 인자하시던 어머니는 갈수록 심연에 빠졌고 랭담해졌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조급하기만 했고 마음이 얼어들었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였다. 그 나날에 어머니는 수련을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유일한 쾌락으로 간주했다. 그렇게 오래동안 수련했어도 병은 여전히 아무런 호전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법륜공”에 대한 믿음만은 동요되지 않았고 깊어만 갔으며 밖에 나가 “법륜공”전단지까지 배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이 일로 인한 쟁논이 그칠새 없었으며 원래 화목하던 가정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수차 권유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자 아버지는 분김에 가출을 했으며 그후로 행방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후회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완고할 수 있는데는 얼빠진 “대법제자”로 된 큰 외삼촌한테 그 주된 원인이 있다는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큰 외삼촌 허군은 머리가 돌아 다른 사람들이 옥수수를 심을때 야채를 심어 자금을 모아 세탁소를 차렸다. 몇년간 경영이 잘되여 친척,친구들로부터 위신을 쌓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외삼촌은 “대법제자”로 되여 외숙모와 나의 어머니, 작은 이모한테 “법륜공”을 선전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수차 행정처벌을 받는 바람에 세탁소관리가 어눌하여 문을 닫고 말았다. 그 후 2002년, 큰 외삼촌은 뇌혈전을 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차 나았다.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는데 병이 나았다”는 외삼촌의 말에 어머니는 수련할 결심을 더 크게 다졌다. 사실 가문에서 다 알고있다시피 외삼촌의 병은 워낙 중하지 않았고 또 제때에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기에 나은 것이다. 외삼촌이 조용히 집에서 휴양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누구도 그의 수련을 간섭하지 않았다.

2006년부터 외삼촌은 모 태양에너지 온수기 브랜드의 판매대리를 시작, 대박을 맞아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모두들 그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호황은 길지 않았다. 큰외삼촌은 “법륜공”선전을 위해 가정의 저금을 다 털어 “법륜공”서적을 사들이고 테이프와 전단지들을 제작했으며 “수련동수”들을 모집하고 수련을 지도했다. 결국은 우리집과 작은 이모한테서 빌린 몇 만원의 돈까지 몽땅 탕진해버리고는 제딴에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공덕을 쌓았다”고 억설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승천을 하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완전히 알거지다. 이 때문에 큰외삼촌과 어머니, 작은 이모사이에도 말썽이 그칠줄 몰랐고 화목하던 일가는 소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더욱 큰 불행이 조용하던 우리 이 가정에 들이닥칠 줄이야! 2008년 어머니는 뇌혈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상황이 아주 위급했다. 의사는 한시간만 늦게 병원에 호송되었더라도 생명위험이 컸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전력 구급처치를 거쳐 어머니의 병은 끝내 차도를 보였다. 입원 한달후 가정의 저금을 외삼촌이 다 써버린 탓으로 나는 퇴원하여 집에 돌아가서 계속 치료받겠다고 의사와 상논했다. 의사는 이미 병세가 온정된 상태라 집에 돌아가도 되지만 계속하여 약을 써야된다 당부했다. 집에 돌아온후 어느새 소식을 얻어들은 큰 외삼촌과 작은 이모가 찾아와서 어머니 병은 “세세대대로 쌓아온 업력(业力)때문이므로 업력을 없애야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외삼촌과 작은 이모의 정신상태에 이상이 없기에 별 생각없이 그들에게 어머니를 돌봐달라 맡겼다. 천진한 나는 그래도 기공에 얼마간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들이 정성들여 밤낮을 이어가면서 돌봤으나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커녕 도리여 갈수록 더 가중해져 며칠사이에 머리카락은 반나마 희여졌고 얼굴색은 피기없이 창백해갔다.

어머니의 베개머리에 놓여있던 중약,양약은 매일 표준량으로 줄어들었고 정맥주사도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한다. 그럼 그들이 나를 속였단말인가? 어머니를 다시 병원에 보내 치료하자고 제의했으나 큰외삼촌과 작은 이모가 계속 집에서 치료해보자고 고집하는 바람에 나는 동의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병시중에 나는 어쩐지 시름을 놓을 수 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나는 일찍 집에 돌아와 뒤뜨락에서 우리집의 동정을 살펴보기로 작정했다. 돼지우리 곁을 지날때 뜻밖에 돼지분변우에 떨어져 있는 정맥주사관 몇개가 느닷없이 눈에 띄었다. 정신을 가다듬고보니 아직 채 맞지않은 여섯병의 주사액과 일부 약들이였다. 이어서 나는 뒤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봤다.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맞던 정맥주사가 보이지않고 곁에 앉은 외삼촌과 작은 이모가 입속으로 념불 외우듯 무어라고 중얼대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병마의 시달림에 모대기는 어머니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오빠, 동생! 난 정말 참기 어려워, 법륜이 전환되는 거겠지!”라고 연신 외쳤다. 사실 어머니의 생명은 이미 매우 위험한 경각에 이른 것이다. 목을 움츠리고 옆에 앉은 외삼촌은 낮은 소리로 “너는 오빠보다 수련을 시작한 시간이 늦을 뿐이지 나보다 훨씬 높은 층차에 이르렀구나. 오빠는 아직 더 수련을 해야겠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이때의 큰 외삼촌과 작은 이모는 이미 정상인의 이지와 양심을 완전히 상실했던 것이다. 나는 몹시 격분했다. 어쩌면 지독하기로 어머니의 치료까지 막는단 말인가!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다짜고짜 그들을 내 쫓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리 권해도 치료를 거절했다. 2008년 11월 23일, 나의 일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어머니는 제때에 치료를 받지 않은 원인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영영 떠나셨고 나는 고아로 전락되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심정으로 파출소에 사건을 제보한후 큰 외삼촌과 작은 이모를 모두 구속시켰다. 친척들은 모두 나를 인정머리가 없다 나무라며 나와 발길을 끊었다. 만약 내가 진정 언녕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그렇게 일찍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것이며 오늘처럼 친인 한사람도 없는 처지는 아니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전 소문에 외삼촌은 로동교양소에서 뇌혈전이 재발하여 가석방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으나 치료를 거부하여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작은 이모는 그 무슨 “공정한 도리”를 찾는다면서 외삼촌의 사망은 박해로 인한 치사라고 떠들고 다닌다 했다. 큰 외삼촌은 돌아갈때까지도 그들 “스승님”의 보호를 받지못했을뿐만아니라 더더욱 “승천”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이모는 여전히 고집스레 회개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가슴아프고 또 가소로운 일인가? 정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다.

(Kaiwind.com, 1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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