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청분(陈清芬), 여자, 61세이며 사천성수녕시(遂宁市)명성전력공사 퇴직종업원이다. 법륜공을 수련한다는 말은 워낙 내 인생에서 다시는 더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일이다. 법륜공에 심취되었던 나 하마터면 가장 소중한 혈육의 정을 잃을번했고 치료와 약거부로 한창 중년의 나이에 귀중한 생명을 잃을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법륜공에 미혹되어 헤여나오지 못하는 주위의 노인네들을 보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사교 법륜공에서 벗어나 나와 같은 정상적인 행복한 생활로 복귀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나는 나의 그 고통스러운 경력을 털어놓으리라 결심했다.
부추김에 못 이겨 오류에 빠지다
나의 남편은 오래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딸 둘이 같은 수녕시내에 살고 있지만 다들 직장일이 바쁘다보니 평소에 나와 마주앉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천식에 시달려 다년간 약을 복용해야 했기 때문에 아주 고통스러웠다. 때로는 밤새도록 잠을 잘수가 없어 앉은뱅이 의자를 침대곁에 갖다놓고 엎드려 잠을 청하군했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숨이라도 막혀 넘어가는것 아닌지 불안했다. 규칙적인 출근생활에 익숙했던 나는 1998년 10월 퇴직후 집에 혼자 있자니 심심하기 짝이 없고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1999년 2월, 수녕시 노년대학에서 피아노 공부를 할때었다. 나와 같이 피아노 공부를 하는 몇몇 노인들이 너도나도 법륜공을 수련하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며 소업으로 재앙을 면하고 돈을 쓰지 않고도 백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진,선,인”과 좋은사람 되기를 가르쳐주고 도덕적으로 높은 층차로 제고시켜준다 했다. 그중의 한분이 성이 습씨인데 다들 그를 습언니라 불렀다. 노년대학 옆에 집이 있고 키가 작은데다가 간복수로 남산같은 배를 불룩 내밀고 다녔다. 우리는 그를 임신부라 칭하며 “며칠만 더 지나면 곧 애를 낳겠네요?”라고 농담을 건늬군했다. 듣자니 그는 일찍 1996년초에 이미 “득법”을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홍법”을 진행하여 그들을 법륜공 수련에 가담시켰다 했다. 그 당시 나는 아무렴 할일없이 심심한데 병을 제거하고 건강할수만 있고 약 먹는 고통을 덜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 어디에 있으랴? 싶은 생각으로 실험삼아 매일 습언니와 함께 무소(犀牛)광장 혹은 성농업기계학교에 가서 법륜공을 수련했다.
나는 나름대로 하는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법륜공수련 역시 마찬가지었다. 단체학습과 수련교류에 참가하는 외에 나는 매일 집에서 2-3시간씩 연공을 견지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또 이홍지의 화상, 수련용 방석 및 <전법륜>과 <법륜공의해> 등을 샀고 수련“정진”으로 습언니와 더불어 우리연공지점의 골간으로 되었으며 교류대회에서 여러차례 수련심득을 발표했다. 이렇게 1개월간 연공을 견지하니 정신상태가 많이 좋아졌고 일을 하거나 걸음을 걸어도 이전처럼은 힘겹지 않았고 생활의 보람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홍지의 “진, 선, 인”, “좋은 사람되기”와 “도덕적으로 높은 층차로 제고”, “법신보호”, “소업” 등 이론에 대해 조금도 의심없이 깊이 믿었고 수련에 열을 올렸으며 약 복용을 중지했다. 동시에 기타 공우들과 마찬가지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그들에게 법륜공을 선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수련에 가담시키려 애썼으며 소위 “홍법”을 진행했다.
미혹에 빠져 친혈육을 내 쫓다
그러나 딸과 사위는 한사코 법륜공수련을 반대했고 과학을 믿고 계속 약을 복용해야지 병을 지체해서는 안된다 권유했다. 중학교를 다니는 외손녀마저도 법륜공수련은 사람을 속이고 돈을 사기치는 수작이라했다. 그러나 그런 말이 나의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딸의 견결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열심히 수련했고 소위 “높은 층차로의 제고”와 “원만”을 기대했다.
1999년 7월 국가에서 법륜공 단속령을 발포한지 얼마되지 않아 두딸은 함께 찾아와 법륜공은 불법조직이며 국가에서 이미 불법조직으로 확정한 이상 더는 수련하지 말라 거듭 권유했다. 당시 제딴에는 법륜공 수련 덕분에 이제 겨우 좋은 신체을 찾았고 약 복용 고통에서 벗어났는데 딸로서 효도를 한다면 응당 기뻐해야 할것이고 계속 수련을 견지하도록 나를 밀어줘야 할 도리가 아닌가는 생각으로 그들의 반대야말로 불효라 인정한 나는 화가 치밀어 나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 그들을 내 쫓으며 앞으로 나를 보러오지말라 했다. 그들은 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상심해서 발길을 돌릴 수 밖게 없었다.
혼자서 고생스레 자래운 딸들이 나를 지지하기는 커녕 한사코 반대해 나서자 나는 더더욱 실망스러웠고 상심했다. 이때 시드니설법에서 한 “사부”의 말씀이 떠올랐다. “누가 당신의 진정한 육친인가?...... 일생, 일생에, 매 한생, 매 일세(一世)에 당신은 부모가 얼마이며 아내, 자식, 자매 형제가 얼마나 있는가?.....당신은 다 셀 수도 없다/…/…어느 것이 진짜인가/…/…당신의 진짜 부모는 우주에서 당신이 생긴 그곳에 있으며 거기에 비로소 당신의 부모가 있다/…/…그러므로 당신의 진정한 부모는 지금 바로 거기에서 당신을 보고 있으며 당신이 되돌아가기를 바라는데 당신은 되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미혹되어 있으면서 또 여기에 모두 육친이라고 여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딸들을 “대법”과 아무런 인연히 없는 낯선사람으로, 내 수련길에서의 악마의 장애로 여겼다. 이때로부터 가끔 딸들이 날 보러 와도 나는 문을 열어주지않거나 아예 공우들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연공을 했다. 친딸들과 거의 내왕을 끊다시피했다.
갑작스런 발병으로 진상을 알게 되다
2001년 5월 3일 아침을 나는 너무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집에서 연좌연공을 하던중 갑자기 복부가 심하게 아파나 침대에서 마구 뒹굴었다. 이웃에서 나의 고통스러운 외침소리를 듣고 들어와 병원에 가자했다. 아픔을 억지로 참으면서 나는 이건 병이 아니고 사부가 나를 도와 “소업”을 해주는것이니 병원에 갈 수 없다 해석했다. 하도 우기는 바람에 이웃은 할수없이 딸과 사위에게 전화를 했다. 급히 달려온 그들히 조급해 울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기어이 병원에 가지않으려 고집했다. 오후까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있다가 큰 딸이 120에 전화하여 나를 억지로 수녕시 인민병원에 실어갔다. 이때 나는 이미 아파서 허탈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검사후 급성맹장염이므로 즉시 수술을 해야지 그렇지 않다간 생명위험이 크다했다. 다행이 병원에 왔기에 말이지 한시간만 더 지체됐으면 목숨은 건지지 못했을 것이라했다.
급성맹장염으로 생명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나는 수술을 거절하고 병이 생긴 원인을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지어 계속 법륜공수련으로 “소업”을 통해 병을 제거하려 환상했다. 그러나 딸들과 사위들의 견지하에 의사는 끝내 수술로 나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2001년 5월 14일 오후 나는 퇴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노년대학주위를 지날때 장송곡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별세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공우이며 나의 법륜공수련의 인도자인 습언니가 돌아갔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듣자니 그는 진료와 약 거부로 간복수가 간경화로 전이되어 사망되었으며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공자세를 취하고 죽었다 한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아주 곤혹스러웠다. <전법륜>에 한사람이 병이 생기는 것은 업력이 있기 때문이고 연공으로 소업을 할 수 있다하지 않았는가? 그토록 성스레 진심으로 수련했고 수련을 위해서 친딸과도 거의 발길을 끊어버린 내가 결국은 이런 결과를 맞다니? 갑자기 자기가 정말로 행운스럽게 생각됐다. 습언니는 조금도 드팀없이 “진,선,인”의 요구대로 열심히 수련했고 연공지점에서도 이름을 날렸건만, 지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다니? 나는 그래도 딸들을 볼 수 있고 외손녀도 볼 수 있고 자손들과 오손도손 모여사는 행복한 만년을 즐길 수 있지 않는가. 신변의 딸들과 사위, 외손녀, 그들의 친절한 눈길을 받으며 이전의 자신의 “몰인정”을 생각할때 소위 원만을 위해 친혈육의 감수마저 헤아려주지않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를 깊이 깨달았다.
지금 나는 큰딸과 함게 생활하고 있다. 진료와 약치료를 거쳐 나의 천식도 훨씬 많이 나았고 신체도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나는 지금 집에서 집안일들을 거들어주고 울안의 야채도 가꾸며 유쾌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 주말이면 온집식구 함께 산책도 나가고 얼마나 행복한지 이루다 표현할 수 없다!
(Kaiwind.com, 200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