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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켜본 “해남 특대 차사고”건

2009-07-27 기원 하 다:Kaiwind Auteur:료여명

나는 료여명(廖黎明), 36세, 대학문화, 해남성 해구시 사람이다. 해구시 법륜공보도소 빈해분소(滨海分所)보도원이었으며 이홍지의 터무니없는 역설의 정신통제로 법륜공조직의 위법범죄활동에 참여, 형법을 어겨 형사판결을 받았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법륜공이 나를 잔인하게 해친 죄행들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나는 감옥에서 스스로를 도로 찾았고 법륜공과 철저히 결별했다. 불현듯 깨닫고 뉘우치면서 주변의 일체, 가족들과 동료들 그리고 친구들을 더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더우기 “해남 특대 차사고”건을 지켜보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법륜공을 의심했고 점차 각성하여 최종 이홍지의 비열한 몰골을 철저히 간파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지난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목적은 바로 사건본래의 면모를 회복시키고 이홍지의 새빨간 꺼짓말을 까밝아놓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이다.

1998년 7월 4일 오전 10시, 하늘에서는 호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해남성 동선 고속도로 만녕(万宁)에서 령수(陵水)까지의 도로구간에서 특대 차사고가 발생했다. 해구에서 삼아(三亚)로 달리던 해남 마즈다 봉고차 한대가 큰 뻐스와 충돌하는 바람에 차에 탔던 8명중 7명이 사망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것이 바로 해남성 법륜공 수련자들속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던 “해남 특대 차사고”건이다. 차에 탔던 8명 승객 모두 해남성 법륜공골간인원이었고 그들의 삼아행 목적은 “홍법”을 가던 중이었다.

해남성 법륜공보도소는 이홍지의 지시에 따라 해마다1-2차씩 전성 법륜공학원 법회를 조직했다. 번마다 법회가 열리기 1개월전부터 준비에 서둘렀고 수련자들속에서 원고를 수집하여 총부에 보내 심사를 받은후 최종 법회에서의 발언 적임자와 발언원고를 확정했다. 각 시,현법륜공보도분소(分所)는 해남성 총부 격식대로 여러가지 형식의 소형법회를 조직했다. 1998년 6월 삼아시 법륜공보도분소는 7월초에 학원들의 “홍법”법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법회에 시소속의 여러지방에서 법륜공수련으로 정진한 법륜공수련자들이 참가, 동시에 해남성보도소 총부의 골간인원을 초청하여 공법전수와 교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해 해남성 법륜공보도소의 주요 성원들로는 장효군(蒋晓君), 진용(陈勇), 양춘회(杨春淮), 정서형(郑瑞馨), 민겸(闵谦), 송악승(宋岳胜), 란혜분(兰惠芬) 등 7명이었다. 7월 4일 차사고를 당한 8명이 바로 해남성 법륜공보도소 소장 장효군과 부소장 진용을 따라 삼아시 “홍법”법회에 참가하러 가던 법회의 법륜공골간들이었다.

7월 4일, 삼아시 “홍법”법회 참가 법륜공골간인원은 총 13명으로 차 두대를 나눠 타고 가던 중이었다. 차사고를 당한 해남 마즈다 봉고차는 해남성 빈해보도분소 보도원 송림택(宋林泽)이 운전을 했다. 차에는 해남성보도소 부소장 진용, 해구시 농지개간보도분소 소장 허봉(许峰), 해구시 인민공원보도분소 소장 정서형 그리고 농지개간보도분소 보도원 장일군(张一军) 등 8명이었다. 중상자가 바로 해남성 농지개간국의 종업원 장일군이었다. 절제후 요행으로 살아남았다. 다른 한 차량은 해구시 빈해보도분소 소장 양춘회의 자가용 승용차었고 그가 운전을 했다 차에는 해남성보도소 소장 장효군, 해구시 경산(琼山)보도분소 소장 란혜분 등 5명이 탔다.

나는 1997년초 부터 법류공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전화문의를 통해 장춘기공연구회(气功研究会)의 전화를 알아냈고 그들을 통해 해남성 법륜공보도소 소장 장효군의 전화를 알았다. 장효군과 연락이 닿은후 그는 나를 우리집 가까이에 있는 사해공사(四海公司)보도소 보도원 조애화(赵爱华)에게 소개했다. 그후부터 나는 늘 사해공사보도소를 찾아가 연공을 했다. 그 기간 나는 또 조애화를 통해 그의 남편 양춘회를 알게 되었다. 내가 문화가 있고 연공에도 열성을 보인관계로 양춘회는 나를 빈해분소의 보도원으로 추천했다. 함께 집단연공을 하거나 각지로 순회하면서 학원들과 학습과 교류를 진행한 관계로 나는 해구시 법륜공수련자들을 잘 아는 편이었다. 차사고를 당한 8명은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빈해분소 보도원 송림택과 나는 양춘회의 파견으로 현지 법륜공학원들의 학습보도차 여러번 함께 담주(儋州)시, 백사(白沙)현 등지를 다녀오군했다.

출발전날 저녁, 해구시 법륜공골간들은 각각 장효군과 양춘회의 집에 모여 집단학습과 동시에 삼아(三亚) “홍법”법회 참가일정과 인원배정을 토론했다. 빈해보도분소의 법륜공골간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반드시 양춘회의 집에 모여 집단학습을 해야했다. 7월 3일 저녁 양춘회의 집에 모인 법륜공골간은 10여명이었다. 총부에서 삼아(三亚) “홍법” 법회에 참가시키는 자는 모두 정진골간이며 이는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회의에서 나도 참가하겠다 자진했다. 그러나 양춘회는 인원수가 다 차 차에 앉을 자리가 없다했다. 하여 나는 그들과 동행할 수 없었다. 7월 4일 나는 담주시에 가서 법륜공학원들의 학습과 연공심득교류를 지도했다.

 “해남 특대 차사고” 소식은 재빨리 해남성 각지 법륜공학원들에게 전해퍼졌다. 학원들은 너도나도 안절부절 못했다. 이홍지의 말대로라면 진심으로 수련하는 제자는 그의 법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생명 위험도 없어야 하기때문이다. 정진수련만 한다면 장생불로 할 수 있고 사람마다 “백일비승”을 할 수 있다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이토록 많은 법륜공골간들이 죽다니. 궁극적으로 이홍지가  그들을 보호할 수 없으며 그가 불어댄 감언리설이 스스로 헛점이 폭로되고 만 셈이다. 많은 법륜공학원들은 후에 아예 연공지점에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7월 5일에야 차사고 소식을 들었다. 양춘회가 전화로 경과를 나한테 알려주며 송림택 등 8명은 이미 원만되었다했다. 소식을 접한 나는 의혹을 풀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장효군은 심상치않게 생각되었는지 당황해하며 급히 이홍지한테 전화를 했다. 그러나 마침 이홍지가 외국에 있는 관계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할수없이 그는 또 “법륜대법연구회”의 왕치문(王治文)한테 전화를 했다. 왕치문을 통해 차사고건을 이홍지한테 전달했다. 소식을 들은 이홍지는 해남성 법륜공학원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7월 5일 장효군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 “우리의 많은 학원들은 부동한 층차. 부동한 천국에서 왔으며 목적은 우주대법에 동화되기 위해 형식을 가리지 않는다. 원만시 그들 세계의 특점으로 육신을 얻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한 원만방식이 이루어진다. 대법제자중 오직 법신세계로 간 사람만이 전화(转化)후의 육신을 갖고 원만한다. 사부는 당신들의 마음을 안다. 사실 당신이 나의 편지를 받은후 나의 그 8명의 제자는 이미 그들의 부동한 세계에서 원만을 이룬것이다.”

장효군은 이홍지의 친필 편지를 들고 직접 각 연공점을 순회하면서 선독하고 학원들을 끌어들이고 부면영향을 만회하려고 애썼다. 법륜공학원들은 주교에 대한 숭배와 법륜공의 터무니없는 역설의 독해에 푹 빠져 이홍지를 의심치 않고 깊이 믿었으며 그의 원만설을 믿었다. 예컨대 송림택의 형님 송악승(정서형이 사망후 송악승이 해구시 인민공원 보도분소 소장을 담임)은 동생의 참사를 보고 비통과 슬픔보다는 기쁨과 부러움이 더 컸으며 동생의 원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거짓은 어디까지나 진상을 덮어 감추지 못하기 마련이다.

(Kaiwind.com, 20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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