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우사업이고 올해 35세이며 지금 선도(仙桃)시 교통로에서 간이식당을 경영하고 있다. 지난 1995년 선도시 경제관리학교 학창시절 나는 기공애호가로 각종 기공에 호기심을 갖고 많은 기공서적들을 사서 탐독하군 했다.
그때 당시 선도에는 여러가지 기공들이 아주 성행했다. 총명한 선도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기공“대사(大师)”들을 청해 선도에까지 모셔다 놓고 훈련반을 꾸렸다. 법륜공 역시 기회를 놓칠세라 크고 작은 “법회”강좌를 곳곳에서 열었다. 한창 번창했다. 법륜공이 면양(沔阳)극장에서 조직하는 “법회”가 무료란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서둘러 극장에 도착해 맨 앞줄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번 “법륜대법”강좌 주최자는 선도시 법륜공보도소 소장 유문빈(이미 병으로 사망)이었다. 법륜공 강좌가 시작되기전 유소장은 맨 앞줄에 앉은 우리 몇몇 젊은이들 더러 그를 도와 무대뒤에 있던 법륜공서적, 소책자, 이홍지의 사진 등 연공자료들을 무대위로 옮겨다 달라고 했다. 다 옮겨주고 나서 난 돈을 받지 않는줄로 알고 《법륜공》 한권을 손에 들었다. 마침 유의 눈에 띄었다. 그는 부랴부랴 제지하며 강좌가 끝나면 당연히 우리에게 나눠줄테니 다치지 말라 했다.
강좌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무대위의 대사는 “/‘대법/’을 잘 수련하려면 스스로 사부의 책을 많이 읽고 녹음테프를 많이 듣고 집에 돌아가서 잘 깨닫아야 된다”했다. 그는 무대위에 잔뜩 무져있는 자료를 가리키며 “여기 자료가 많지 않기에 배우려는 분들은 줄을 서서 받아가십시오. 자료비용은 일푼도 받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앞으로의 수행에 유감을 남기지 않으려면 이 옆에 놓여진 공덕(功德)박스에 저그마한 기부금이나마 당신들의 마음의 표시로 넣어주십시오. 돈이 많거나 적거나에 있는것이 아니라 중요한것은 당신의 성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라 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중년 여성이 무대에 올라와 인민폐 500원을 “기부”했다. 무대아래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100원을 “기부”하고 녹음테이프 하나 가지는 사람이 있나하면 300원을 “기부”하고 이홍지의 사진 한장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제일 많이 낸 사람은 아마 2000원을 내고 책 한권과 사진 한장을 가지는것 같았다.
그날 나는 무료 강연인줄 알고 돈을 갖고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자리를 비우고 나니 자료도 거의 다 “배포”되고 말았다. 법륜공을 배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나는 줄곧 성의껏 기다렸다. 일단 먼저 무료로 받아가지고 가서 학습하고 내일 다시 “기부금”을 내려고 유소장과 상의할 기회를 찾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다 가기를 기다려 무대뒤를 찾아 들어갔다.
무대뒤에 분장실 하나가 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창문을 통해 나는 유소장이 금방 설법을 한 대사와 함께 공덕박스에 들어있는 돈을 세고 있는것을 보았다. 나를 깜짝 놀래운것은 제일 처음 500원 “기부”한 그 여인도 역시 함께 돈을 세고 있었다. 돈을 다 세고 나서 유소장은 500원을 꺼내 손수 그 여인한테 돌려주면서 “여기에 아직도 우리사람들이 /‘기부/’한 1500원이 포함돼 있으니 그들한테 도로 돌려줘야 되고 나머지 42500원에서 2000원은 극장임대비용으로, 500원은 나서서 홍보를 도운 사람한테 주고 나면 나머지가 40000원인데 전부 대사를 통해 사부님께 가져다 바쳐야 된다”고 했다. 돈을 넘겨받아 쥔 대사는 다시 세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들키기라도 할세라 부랴부랴 그 자리를 떴다.
이 비밀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법륜공을 배운다는 말을 다시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1999년부터 법륜공이 재물을 착취한 각종 추행들이 매체를 통해 들통났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법륜공의 속임수에서 벗어나왔다.
사람들은 자진해서 법륜공의 서적 등 각종 자료들을 소각해 버렸고 법륜공의 법회도 이로부터 자취를 감춰버렸다.
10여년이 지났다 나는 줄곧 자그마한 간이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활상 별 걱정은 없다. 법륜공은 이미 나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런데 과거에 사람들이 몇백원씩 “기부”를 해야만 받을수 있던 법륜공자료가 의외로 이른 새벽에 나의 간이식당 문앞에 나타날줄이야.
법륜공자료는 이웃 점포들 문앞에도 있었다. 옆집 이발점 이발사 초씨도 나에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 물었다. 나는 “아마 내 난로 피울 불쏘시개가 모자랄가봐 걱정되었나 봐요”라 했다. 초씨는 “이렇게 공들여 제작한 CD에 책과 소책자까지 인쇄하려면 돈이 꽤 들었을텐데? 누가 배포했을가?”라 했다. 나는 “누가 돈 받으러 올가봐 걱정되면 불쏘시개로 쓰게 나한테 줘요”라 했다. 초씨는 재빠르게 여기저기 이웃집 문앞에 있는 서적과 책자들을 다 걷어다 나한테 주며 나보고 빨리 태워버리라 했다. “왜 이리 급해하는데요?”라는 의혹에 찬 나의 물음에 초씨는 “난 그 위에 적혀있는 법륜공이란 몇글자만 봐도 불쾌하다”라 대답했다.
초씨의 아내가(이름밝히기 싫어함) 바로 법륜공 수련으로 인해 병사했던 것이다. 초씨의 아내는 간염환자었다. 법륜공을 수련하면 주사를 맞지 않고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들은 그는 아내의 병이 하루빨리 어서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어느 한 법륜공 법회에서 몇백원을 “기부”하고 아내를 위해 법륜공책 한권을 얻어왔다. 그런데 법륜공에 미혹돼서 부터 아내는 더는 가정일을 돌보지 않았고 하루종일 동수들과 어울려 문을 걷어닫고 연공에만 전념했다. 건강 호전은 커녕 날이갈수록 병세는 악화되었다. 게다가 또 본인이 고집스레 주사와 약을 거부하는 바람에 최후 간경화복수로 사망되고 말았다.
마음아픈 지난일을 잊기 위해 초씨는 시골에서 선도시내로 이사와 상가를 임대하고 지금의 이발소를 개업했던것이다
초씨가 몇백원으로 바꿔온 법륜공책은 그의 아내를 속여 생명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공짜로 배포된 오늘 이 법륜공책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떤 대가를 치르게 만들지!......
(Kaiwind.com, 200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