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련(张玉连), 여, 1938년 출생, 요녕성 심양시 철서(铁西)구 심요동로(沈辽东路)에 거주, 심양시 트랙터공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다 퇴직, 남편 서희선(徐喜先)은 1935년 출생이다. 두 부부는 주위에 소문난 모범 부부로 화목하고 행복했다.
1995년 퇴직한지 몇 년되는 장옥련은 종일 하는 일 없이 지루하기만 했고 온몸이 피곤하고 무기력했다. 건강한 몸으로 몇 년 더 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웃의 극력 추천으로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매일 이웃들과 함께 광장에 가서 연공을 시작한 후의 장옥련은 온몸에 힘이 솟구쳤고 옛날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좋은 단련방법을 찾았다 싶어 매우 기뻤다. 어느 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돌아온후 부터 단순한 건강단련이 신공호체(神功护体)를 추구하는 갈망으로 바뀌었다. 바로 이때 이웃에서 장옥련에게 연공의 좋은 점이 많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성심껏 믿고 신봉하기만 하면 곧 개공하고 신공호체가 펼쳐져 연년익수하게 되며 지어 천국으로 비승하여 좋은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했다.
이런 신기한 좋은 공을 수련함으로 하여 장옥련은 마음의 긴장을 충분히 풀고 일정한 동안은 의기양양했다. 남편 서희선은 젊어서 부터 허약하고 고혈압, 지방간 등 잔병이 많았다. 장옥련은 늘 남편앞에서 법륜공의 좋은 점을 자랑하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치료효과를 과장했다. 점차 두 사람은 사랑하는 부부, 친밀한 동수로 됐다.
층차를 더 빨리 제고하기 위해 부부는 법학습 소조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동수들을 집에 불러놓고 이홍지 초상화앞에서 정기적으로 법학습을 진행하고 비정기적인 교류법회도 가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법학습에서 정진했다는 인상을 심어줬고 동수들은 구변이 좋은 장옥련을 보도소의 보도원으로 추천했다. 자신의 법학습이 성과가 있게 되자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공기둥이 생길때까지 연공하면 곧 신공호체가 펼쳐지게 된다 남편을 격려했다.
연공을 시작한후에도 장옥련은 자주 잔병이 나고 허리, 다리가 쑤셔나군 했다. 그러나 그는 종래로 약을 먹지 않았고 더더욱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본 적 없다. 원래 경한 증상이고 또 본인의 저항력이 강한편이어서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는 이런 것들이 사부의 도움으로 자신의 신체가 정화(净化)되어 업이 거의 제거됐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희선의 건강은 별 차도가 없었고 눈에 띄는 발전이 없었다. 매일 연공을 견지하고 법학습을 진행했지만 별 호전이 없고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고 몸 조섭에 소홀한 탓에 간병이 점점 심해지고 수척해갔다. 늘 온몸이 무기력하고 밥맛이 없었으며 안색이 누렇게 떴다. 몇번이고 병원에 가려는 생각을 드러냈으나 번마다 장옥련이 막아나서며 성의가 모자란다 나무랐다. 그는 “신체에 병이 있다는 것은 검은 연기가 솟아남으로 하여 생기는 외재적인 현상이며 세포가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되는 과정이요. 신체가 사부의 도움으로 완전 정화된후는 금강불괘(金刚不坏)의 불체로 돼요. 불편함은 업력때문이고 당신이 약하면 그는 강해지고 당신이 강하면 그는 자연히 도망가요. 저를 봐요. 지금의 건강상태가 얼마나 좋은가? 사부가 당신을 고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라 교육했다. 아내의 말에 서희선은 대법에 미안한 생각도 들고 또 원만이 코앞에 다가왔다 믿고 병을 더 개의치 않고 연공을 다그쳤다. 이때의 장옥련에게는 수련이 삶의 전부였다.
몇년간 수련 결과 서희선의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앙상하게 여윈데다 걸음걸이 마저 휘청거렸고 5층을 걸어오르려면 번마다 몇번씩 쉬어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사부가 소업을 해준다 믿고 자신이 전세에 진 업을 갚고 있다 생각했다. 장옥련도 이를 크게 칭찬했다. 마누라의 적극 지지와 격려에 그는 더더욱 신체상의 불편이 바로 신공호체 징조라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병을 방치한 결과 서희선은 복부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별 증상이 없던데로 부터 배가 남산만하게 부어오르고 숨을 헐떡거렸으며 헛구역질이 나고 얼굴색이 검누렇게 찌들었다. 그래도 그는 고집스레 약을 복용하지 않고 병원진료를 거부하고 죽어라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하고 법학습을 진행하며 부어오른 배가 내려가기만 빌었다. 자식들이 부모뵈러 왔다가 부친을 보고 깜짝 놀라 병원에 모시고 가려 했으나 두 부부는 고집을 부리며 병원에 가지 않는다 했다. 안달아난 자식들이 갖은 방법을 다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장시간의 법학습과 연공이 그를 비정상인으로 개조시켜 서희선은 어리어리해지고 멍청해졌다. “세간이란 사람들의 객점에 불과하다. 수련인은 조만간 더럽고 천한 육체를 버리기 마련이다”라는 부친의 말에 아들딸들은 할말을 못 찾았다.
건강이 하루하루 눈에 띄게 악화됐지만 그들 부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사부의 법신 보호가 있으므로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향 피우고 절하고 가부좌하고 법학습을 하고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4년 남짓이 약과 치료를 거부한 서희선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64세 되던 1999년 4월의 어느날, 고강도 가부좌 연공후 쓰러지고 말았다. 그후 다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남편 사망후 장옥련은 사망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법륜>을 십여번이나 반복 통독하고 이홍지의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원신(元神)이다”, “우리가 고층차에서 볼 때 사람은 죽었지만 원신은 불멸이다”, “연공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생명체가 있다”는 등 말을 깊이 믿었다. 사망이란 남편이 /‘가부좌하다 원신이 이체/’됐을 뿐이고 속인세계에서의 가상에 불과하므로 신체를 지키는 원신은 살아있다. 남편의 육신을 지키기만 하면 사부는 꼭 남편을 도와 혼백을 돌려보내 깨나게 할것이다.
그는 아주 침착하게, 더더욱 자녀와 친지들에게도 남편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남편의 육신을 침대에 눕히고 새옷을 갈아입히고 <전법륜>을 남편의 신변에 놓았다. 사부의 법신이 꼭 남편을 보호하여 원신을 돌아오게 할 것이라 믿었다. 이홍지의 초상화를 향해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남편이 기사회생해 돌아오기를 기구한다 중얼댔다. 그는 깊은 밤 11시부터 1시를 선택하여 향을 피우고 /‘불상/’(이홍지의 화상)을 참배하고 남편을 위해 접공(接功), 남편의 혼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연속 3일 밤낮 쉬지않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육신을 지켰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남편은 여전히 깨나지 못했다. 아들이 집에 오지 않았었다면 장옥련은 얼마나 더 황당한 짓을 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