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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의 코미디 활극(포토)
    
2013-01-15  Kaiwind  筆者:호효국(구술) 고개(정리)    

 

호효국 최근 모습

 

 

불에 타버린 가옥

저는 사천성 자중(资中)현 흥융가(兴隆街) 진고봉(镇高峰)촌에 살고 있는 호효국(胡孝国, 47세, 소학 문화)이라 합니다. 10년전에 ‘삼속기독교(三赎基督教)’에 가입하여 후회막심한 ‘죽음으로 천당에 진입’하는 현실적 코미디 활극을 공연했습니다.

2002년 6월, 큰 누나 호소금(胡素琴), 셋째 누나 호소화(胡素华)가 ‘삼속기독교’를 믿으면 복음을 전달받고 병을 치료하고 악마를 쫓으며 평안을 지키고 ‘사후 천당에 진입’한다고 누누이 선동하고 권유하기에 ‘삼속기독교’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생명식량’을 먹기 시작했고 매일 식량 100그램을 초과하지 않도록 저울에 달아 먹고 식사전에 ‘기도하고’ ‘신(神)’과 ‘선(仙)’의 존재를 가슴깊이 믿고 종일 ‘천당에 진입’할 꿈만 꿨습니다. 한동안 정력을 ‘삼속기독교’에만 몰두시킨 결과 얼마후 ‘집사’로 임명되었고 ‘천당에 지입’하기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택할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제가 ‘신교’하는 바람에 원래 사이가 좋지 않던 부부관계가 더욱 팽팽히 맞서고 싸움이 잦아지면서 아내가 단호하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생활에 신심을 잃은 저 역시 하루속히 그 진탕에서 해탈되고 싶었습니다.

2002년 9월 24일, 저는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천당에 진입’할 준비를 시작했고 집의 옷가지들과 식량을 버렸습니다.

이튿날 오전, 마침 셋째 누나가 저희 집에 왔기에 “‘천당에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원병장(袁炳章)을 불러오고 평시에 보던 책도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원병장과 셋째 누나는 다른 마을에 살지만 역시 ‘삼속기독교’를 깊이 믿어 우리 셋이 자주 모임을 가졌기에 셋이 함께 ‘천당에 진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누나가 부랴부랴 밭에서 일하는 원병장을 저의 집에 불러왔고 저는 땅콩과 사과로 그들을 접대하고 함께 약주를 마시고 저녁은 계란 국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저녁에 TV를 잠깐 보다가 잠들기 전 셋째 누나와 원병장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두렵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누나와 원병장, 그리고 저와 저의 아홉 살 아들, 넷이서 옷을 입은 채 한 침대에 누워 깊은 밤중에 한 가닥의 연기로 변해 지붕을 통해 ‘천당에 진입’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를 위해 ‘천당에 진입’하는 통로로 지붕에 구멍을 크게 뚫어놓았습니다.

26일 새벽 1시 무렵, 저는 잠든 누나와 원병장과 아들을 깨워 침대에 앉히며 ‘천당에 진입’하기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잠에서 깬 아들이 울며 “천당에 가기 싫어, 난 공부할래!”를 고함 질러 한참 들볶다 보니 아무도 ‘천당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만 포기하기 싫어 더 큰 결심으로 꼭 성사시키리라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우리집 울안에 불러놓고 제가 먼저 웃옷과 바지를 벗어버리고 아들의 옷도 홀딱 벗기고 (누나가 제 아들을 안고 있었음) 누나에게도 옷을 다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죽 끈을 찾아 네사람의 목을 감아 줄지어 세워놓고 제가 앞에서 그들을 끌고 울안과 실내를 빙빙 돌며 중얼대며 손에 닥치는 대로 솥, 그릇, 옷장, TV등 집기들을 죄다 때려부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쇠망치로 문턱을 치고 그들에게도 각자 12번씩 내리치라고 시켰습니다.

한시간동안 소란을 피우고 난후 다들 숨차 헐떡거렸지만 꿈속의 ‘천당 진입’은 여전히 아무 결실도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미리 준비했던 사닥다리를 타고 그들을 끌고 지붕위로 올라가 함께 ‘신선’이 우리를 데려가달라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후 끈으로 서로를 묶고 미리 준비한 우산을 펼치며 함께 뛰자고 소리질렀습니다. 이렇게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는데 지붕위의 기와가 부서지는 바람에 넷은 함께 부엌 장작더미위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천당 진입’의 꿈에서 깨지 못한 채 더 열광적인 행동을 벌였습니다. 부엌에 떨어진후 누나와 원병장에게 아들을 침대에 안아 올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라 했습니다.  ‘천당에 진입’할 때 아들을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집을 나와 라이터로 집앞에 무져놓은 장작더미에 불을 달았습니다. 분신하는 방식으로 함께 ‘천당에 진입’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짝 마른 장작들이 활활 타 오르기 시작했고 바람에 휘날려 지붕까지 타 올라 절반 하늘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이웃들이 불난 우리 집에 왁짜지껄 몰려왔습니다. 활활 치솟는 불길과 주변의 법석이는 소리에 저는 오히려 제정신이 들어 심한 후과를 초래했음을 깨달았고 두려운 나머지 아들과 그들 셋을 챙기지도 못하고 알 몸인 그들을 방치한채 뒷산으로 죽어라 냅다 뛰었습니다.

도주하는 길에 어느 집 뒤울안에서 옷을 한벌 걷어 입고 뒷산의 동굴에 숨어 살면서 배고프면 생고구마를 뜯어먹고 목이 마르면 샘물을 마시며 일주일 가량 견디다가 피곤하고 허기증이 나고 졸음이 몰리고 종일 정신이 흐리멍덩해 도무지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도 걱정됐으므로 집에 돌아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을 만났는데 그는 저의 미치광이 행동을 아주 가슴아파하면서 세사람은 다 무사하고 경찰이 저를 수배하고 있으니 죄가 더 가중되기전에 하루속히 스스로 자수하여 경한 처벌을 빌라고 권했습니다.

2002년 10월 4일, 저는 현 공안국을 찾아가 자수했고 고의적인 살인(미수)죄로 7년 형기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범수형자로 형기를 11개월 단축하여 2008년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사건조사팀 공안인원을 통해 제가 도망간후 이웃들이 저의 집에 달려와 불을 끄고 사람을 구원했는데 셋째 누나 호소화와 원병장이 침대에서 아들을 중간에 껴안고 뭐라고 중얼대며 손을 놓지 않아 기별을 받고 달려온 형부가 누나의 뺨을 힘껏 내리쳐서야 억지로 그들의 손을 떼고 저의 아들을 집안에서 안아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이 셋째 누나와 원병장을 불더미속에서 끌어내 요행으로 인명피해를 면했답니다. 결국 돼지우리가 타버리고 가옥 네칸 중 두칸이 불에 타고 돼지 두 마리도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 황당무지한 ‘죽음으로 천당에 지입’하는 활극 공연이 끝난후 저와 아내는 끝내 이혼했고 큰 누나, 셋째누나와 발길을 끊었고 ‘삼속기독교’와도 고리를 철저히 끊었습니다. 지금 저는 인근의 세멘트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아들도 자라서 돈벌이를 떠났습니다. 아직도 구차하게 살지만 생활은 안정적인 편입니다. 지금 10년 전의 그 황당무지한 ‘죽음으로 천당에 진입’하려던 짓을 세상에 알리는 원인은 옛 일을 새삼스레 끄집어 제 아문 상처를 다시 째기 위해서라 아니라 사람들이 이를 교훈 삼아 사이비 종교를 믿지 말고 제가 걸었던 길을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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