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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공인원이 일으킨 폭발사건
    
2011-10-09  Kaiwind  筆者:진군    

2000년 4월 5일, 수만 시민과 관광객들이 북경 천안문광장으로 서서히 몰리고 있다. 그들은 다함없는 숭경의 심정을 안고 모주석기념당을 방문, 위인께 헌화하고 애도의 마음을 전달하러 왔다.

오전 10시 경, 천안문광장 동측 제 44호 조명기둥 옆에 있는 웬 중년 남자의 수상한 행동거지가 근무중인 무장경찰부대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혐의범 이해풍 검거

무장경찰 부대원은 법에 따라 그에게 취조를 진행, 취조를 받던 중년 남자는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그 찰나 민첩한 무장경찰부대원이 신속히 그의 행위를 제압했고 당장 그의 몸에서 암모늄폭약 뇌관 4개를 수거했다. 세계를 경악시킬 악성 폭발사건이 근무 수행중의 무장경찰부대원의 높은 경각성으로 미연에 방지됐다.

이해풍의 몸에서 수거한 폭약

그는 누구고 왜서 천안문광장에서 폭발사건을 일으키려 했는가?

조사에 따르면 남자의 이름은 이해풍(李海丰), 1949년 7월 14일 출생, 한족, 소학 학력, 하북성 진황도시 유강(柳江)탄광 광부, 하북성 무녕(抚宁)현 차붕(茶棚)향 후석하(后石河)촌에 살았다.

1998년 4월, 이해풍은 강신건체의 목적으로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홍지를 우러러 추앙했고 평시에 짬만 나면 이홍지의 <전법륜> 등 책을 보고 법륜공의 공법을 연습했다. 매일 법 공부와 연공을 제외한 TV나 법륜공과 무관한 책은 일절 다치지 않았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을 취체했다. 이해풍은 정부의 결정에 극도로 불만했고 주변에서 공우들과 아내가 연공을 그만두라 입이 닿도록 권했지만 기어이 법륜공에 대한 공정한 해명을 받아내고 말테라 결심했다.

이해풍에 따르면 “나는 일심으로 불(佛)이 되고 장생불로하기 위해 친족들도 관심하지 않고 가정도 다 포기했다”, “30년 고락을 같이 나눈 마누라가 그렇게 권해도 계속 수련하기 위해 나는 이혼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혼 제출 당일 밤 마누라가 울다가 다섯번이나 쇼크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를 안위하기 위해 다시는 연공하지 않는다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은 절대 동요가 없었고 나중에 계속해서 법을 학습하고 연공을 했다.”

2000년 구정전후 무녕현의 일부 법륜공성원들이 사교조직을 이용하여 법률실시를 파괴한 혐의로 경찰의 강제조치를 당했다. 이 사건이 이해풍에 대한 충격이 아주 컸다. 그는 “2000년 4월에 이르러 나는 더는 연공을 할 수 없었다. 앞이 내다 보이지 않았고 원만하고 싶어도 원만할 수 없었으므로 정부를 극히 적대시하게 됐다. 정부로부터 법륜공에 대한 공정한 해명을 받아내고 국제적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어서 극단적으로 행동했다”고 했다.

4월 5일 이른 아침, 이해풍은 사전에 탄광에서 훔쳐낸 질산암모늄폭약 네개를 허리에 감고 ‘법륜대법이 좋다’와 정부에 법륜공취체를 항의하는 글들을 적은 종이 십여장과 라이터를 몸에 지니고 천안문광장으로 왔다.

이해풍은 “나는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에서 몸을 바쳐 법에 충성하려 했다”고 자백했다.

행운스럽게도 천안문광장에서 근무하던 무장경찰부대원이 제때에 이해풍의 행위를 저지시킨 덕에 주변의 무고한 군중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2000년 10월 10일 이해풍은 북경시 동성구 법원으로부터 폭발죄로 유기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사회 각계 인사들의 도움으로 이해풍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게 됐다. “내가 한 짓이 얼마나 사악한 짓인가는 세살짜리 애들도 다 알것이다. 지금 돌이키면 정말로 악몽과도 같다! 끔찍하다! 천안문광장의 무장경찰 전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구해줬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언녕 유골도 없이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고 황천객이 되었을 것이다! 법륜공은 나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해쳤는가, 지난날을 생각할수록 면목없고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2006년10월 4일, 이해풍은 조기 석방돼 나왔고 지금 무녕에서 자유자재한 행복한 노후생활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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