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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공은 가정파탄을 초래한다.
    
2009-03-04  龙虎网  筆者:    

가정은 사회의 세포로 화목한 가정은 사회안정의 초석이다.

그러나 이홍지와 사교 법륜공의 “집착”을 버리고 “높은 층차에 달하고” “원만을 추구”하는 등 터무니없는 역설의 부추김과 속임수에 넘어가 일부 법륜공미혹자들이 부부애를 포기하고 혈육의 정을 무시한 결과 처자식이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가정이 망하고 사람이 죽어가는 인간 참극들이 연달아 연출되었다.

˙유장홍은 “높은 층차에 달하기” 위해 누이동생의 정을 포기했다.

유장홍 여자 요녕성 단동시 모 소학교 교원 출신 남동생이 불행하게 백혈병에 걸려 온 집식구들이 애간장을 태웠다. 골수이식을 해야만 동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유장홍은 자기의 골수를 동생한테 기부하겠다 아무 망설임도 없이 선뜻 대답했다.

그러나 법륜공수련을 시작한 후로 유장홍은 완전히 다른 사람같이 변해버렸다. 가정에 대한 감정을 잃었고 외박이 잦아지고 나중에는 아예 8-9일이 지나도 집에 한번 들어오지 않았다.

백혈병치료를 위해 수십만원 의료비를 지출해야 될 원래 넉넉하지 못한 가정살림에 부모들의 심신은 극도로 지쳤다. 하지만 법륜공에 심취된 유장홍은 다시는 동생한테 골수를 기부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고 오히려 법륜공에 더 깊히 빠져 헤여나오지 못했다. 유장홍은 “높은 층차에 달”하려면 사부의 말대로 집착심을 버려야 하며 명, 리, 정을 버려야 된다고 했다.

˙법륜공으로 인해 관견예의 행복한 가정이 파탄을 초래했다.

호남성 장사시 상표제작공장의 관견예는 병으로 정년미만 퇴직을 한 후 아내 엽사정과 함께 자그마한 서점 하나를 꾸렸다. 수입은 별로 높지 않으나 가정은 따스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법륜공이 이 일체를 다 앗아갔다.

1997년 법륜공을 수련한 후 부터 엽사정은 서점에 들르는 차수가 날이 갈수록 줄었다. 어떤 때는 집을 나가기만 하면 일주일, 10여일, 나중에는 아예 서점일을 돌보지도 않고 책도 들여오지 않았다. 완전히 딴 사람이 돼 버린것이다. 더욱 관견예의 마음을 아프게 한것은 아내의 선동으로 원래 온순하고 말 잘 듣던 아들마저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엽사정은 온 종일 연공 아니면 잠만 잤다. 서점에 와서 책을 빌려가는 사람도 점점 줄었고 장사는 날따라 참담해졌다. 연공을 시작해서 부터 아들의 공부성적도 직선으로 내리막길을 달렸다. 한번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들이 식칼을 자기 목에 대고 “앞으로 다시는 나의 일에 참견말아요. 그렇지 않으면 난 곧 자살을 선택할테라”고 아버지 곽견예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동암은 법륜공의 가해로 가정이 파탄을 초래하고 사람이 죽었다.

1999년 12월 16일 저녁 요녕성의 동암은 겨우 여섯살되는 친딸애를 자기집 침대에서 식칼로 찍어 죽였다. 동암은 1996년 10월 부터 법륜공을 수련했다. 딸을 찍어 죽인 후 맨발로 아파트에서 내려와 “승천, 승천……”을 외쳐댔다.

동암의 남편 서애군은 “아내가 법륜공수련전에는 직장일에 강한 성취욕을 보이고 부모에게도 효도하는 현처양모었다”고 말했다.

그럼 무슨 “마력”이 현처양모가 손수 자기의 친딸을 살해하게 만들었는가? 동암은 회상으로 “그때 한 목소리가 나한테 네가 딸을 죽이면 불처로 수련될 수 있다 말한 것 같다”했다.

˙풍입봉이 투하자살

천진시 계현농민 풍입봉은 이홍지의 터무니없는 역설에 미혹되어 1999년 3월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의 열두살되는 아들과 여섯살의 딸은 너무 큰 심리충격을 받아 공부성적이 급격히 떨어졌고. 나가 돈벌이 하면서 또 아이 둘을 돌봐야 되는 남편은 고달프고 고통스러웠다. 년로한 모친은 법륜공 때문에 목숨 잃은 딸과 파탄된 가정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장견의 투신자살로 부모가 자식을 먼저 앞세웠다.

복건 석유제련화학공업유한공사통신부 엔지니어 장견은 이홍지와 법륜공의 독해로 1999년 2월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의 60여세의 부모는 외아들을 잃고 생활을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온종일 눈물만 흘리고 있다.


  ˙왕석동이 차에서 뛰어내려 사망후 부모만 외롭게 남았다.

요녕성 단동시의 왕석동은 법륜공수련 후 1999년 8월 21일 차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외아들인 그는 결혼날자를 1개월 앞두고 죽었다. 결혼신방은 인테리어를 다 끝내고 혼수품까지 마련했고 친구들과 고객들에게 결혼청첩장도 이미 다 돌린 상태에서 끝내는 이홍지를 따라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막대한 정신 타격을 입은 집식구들은 매일 고통속에서 몸부림쳤다.

˙법륜공은 전건국의 가정에 세막의 비극이 연달아 연출되게 만들었다.

하남성 남양시 양업주식유한공사 종업원 전건국과 아내 왕붕은 1997년 부터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되어 미혹에 빠졌다. 자기들만이 시간나는대로  연공에 열중했을 뿐만아니라 열다섯살도 채 안되는 아들 전배마저 동원시켜 아침 일찍, 저녁 늦게 까지 따라다니며 연공하게 만들었다. 부모들처럼 열심히 수련하기 위해 전배는 점점 공부가 싫어졌고 학교에 지각, 조퇴하던데로 부터 사흘이 멀다하게 무단 결석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들어박혀 법륜공수련에 모든 정신을 팔았다. 일심으로 “높은 층차에 오르고” “원만을 추구”하는 전건국부부는 아들의 법륜공수련이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것보다 더 중요하고 아들이 사부를 따라 배우는것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서 배우는것보다 더 큰 전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건국부부는 동수로 또 피차 상대방의 수련 층차가 떨어져 자기가 고층차로 승화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인정, 결국은 이로 인해 이혼을 하고 말았다.

전건국의 부친은 심한 위궤양을 앓고 있었으나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연공에만 전념해 헤여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정신상 큰 자극을 받았다. 더우기 아들이 이혼하고 손자가 공부를 그만두고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가출, 연달아 이어진 비극들이 년로한 그에게 커다란 정신자극을 초래해 병세악화로 얼마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법륜공은 이수근의 가정이 붕괴의 지경에 이르게 했다

1997년 3월 천진시 녕하현 염장향의 이수근은 법륜공을 수련, 점차 매혹되어 하루 종일 연공에만 열중하고 집안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남편 유하전이 시름놓고 공장일에 전념할 수 없었다. 원래 흥하던 종이박스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고 아이의 공부성적도 내리막길을 달렸다. 더 엄중한것은 이홍지가 고취한 소업론의 영향으로 아내는 자기가 병에 걸려도 주사, 약 일체를 거부하는 외에 아들 유문용마저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못하게 했다. 1999년 초 유문용은 피부병에 걸렸다.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했으나 이수근은 기를 쓰고 막고 자기절로 법륜공 식대로 아들에게 “발공치병”을 했다. 결과 병치료에 필요한 최적의 시기를 놓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문용의 병세가 가중되면서 온 몸에 뻘건 반점들이 크게 퍼졌고 어떤곳은 짓물러졌다. 현지 병원에 의해 피부암이란 초보진단이 내려졌다. 유문용은 휴학을 하고 집에 있을 수 밖게 없었다. 시부모들은 속이 타 여러번 자살마저 생각했었다. 온가정이 이미 붕괴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상술과 같은 법륜공의 매혹으로 인해 초래된 가정비극의 사례는 헤아릴수 없이 많다. 정상생활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홍지와 그의 터무니없는 역설에 속아 한걸음 한걸음 손수 가정을 훼멸하는 사악한 길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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