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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이홍지가 간리에서 학습반 꾸릴때 있었던 일들
    
2010-04-06  Kaiwind  筆者:송건봉    

나의 이름은 송건봉(宋建峰)이고 산동성 간리현(垦利县) 사람으로 전에 간리현 개발구에 근무했었다. 당시는 간리현 개발구관리위원회가 성립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라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당시로서는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하는 줄로만 알았던 법륜공의 창시인 이홍지를 간리로 초청하여 학습반을 꾸렸다. 그때 나는 상사의 배치로 다른 한 동료와 함께 응접과 재무업무를 맡았다.

이홍지는 1994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 부터 초아흐레날 까지 간리초대소에서 학습반을 열었다. 수업은 매일 저녁 7시반부터 10시까지 했고 낮에는 승리유전 등 여러 단위로 다니며 활동했다. 수강생은 420명이었는데 동영시내, 승리유전과 주변의 구,현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고 타 지역 사람은 적었다. 단골의 비용은 50원이었다. 그중에는 북경에서 온 일가 세식구가 있었다. 부모와 딸, 딸애는 열네살이었다. 초 닷새인지 엿새인지 기억은 잘 되지 않지만 새벽 3시정도었는데 2층 숙직당번 쇼류가 소리지르며 나를 깨웠다. 사람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쇼류와 함께 밖에 달려나가 보니 북경에서 왔다는 그집 딸애가 땅바닥에 누워 소리내 울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고개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3층의 방 하나에 등이 켜져있었다. 바로 북경 세식구가 들어있는 방이었다. 부모는 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북경 세식구는 매일 저녁 이홍지의 수업을 들은후 토론을 진행했는데 그날 밤은 서로 의견이 맞지않아 딸애가 방에서 뛰어내렸다 한다.  부모가 일부러 딸애를 밀어 떨어지게 만들었다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먼저 나무에 걸렸다가 땅바닥에 떨어졌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언녕 죽고 말았을것이다.

이 상황을 보고 나는 유계영(이홍지의 재무담당, 여, 당시 35세 정도)을 찾아가 이홍지 보고 병을 치료해 달라 전하라 했다. 이홍지의 방에 들어갔던 유계영이 2분도 채 안돼 도로 나와 “이대사님이 북경일가 세식구는 모두 신경병이므로 신경병은 치료할 수 없다 한다. 수강료를 돌려줄테니 차를 찾아 그들을 간리역까지  6시 40분 기차로 북경으로 떠날수 있도록 태워다 주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홍지의 방 문앞에서 이홍지가 유계영한테 하는 말을 들었다. “북경 세사람은 정신병이다. 정신병은 고치지 못한다”. 이홍지가 거절하자 나는 세식구를 간리병원에 가 보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딸애의 부모들은 “주사를 맞지 않고 약을  먹지 않으며 입원도 하지 않는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북경 세식구는 떠나려하지 않고 간리에 남아 끝까지 “학습반”에 참가한다 고집했다. 그들이 가지않자 유계영은 노발대발하며 그들을 가라고 견결히 요구했다. 그제야 그들은 마지못해 동의하고 북경으로 돌아갔다.

학습반 오픈 기간 이홍지는 책과 휘장, 테이프 등을 팔았다. 책은 정가대로 팔았고 휘장과 테이프는 5원씩 팔았다. 우리가 나서서 팔았고 자기들이 돈을 번다는것을 알가봐 제자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매출액은 전부 유계영이 챙겨갔다.

이홍지가 떠난후 나머지 책, 휘장, 테이프들을 보도소 소장 로우리가 대신해서 팔았다. 판돈은 일전한푼 남기지 않고 전부 그들한테 부쳐보냈다. 팔리는 족족 이홍지한테 보냈으며 매번 송금비용은 로우리 개인이 부담했다.

 

(Kaiwind.om, 200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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